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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에서 '저 700억 회사는 내꺼다' 상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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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에서 '저 700억 회사는 내꺼다' 상상했죠"

노컷뉴스 | 기사입력 2008.04.18 09:48 | 최종수정 2008.04.18 12:53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

미국에서 김밥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인 김밥광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관련 매장이 잇따라 미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 시장에서 김밥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화제의 인물은 700억원 식품회사인 JFE를 경영하는 김승호 대표로, 그는 2004년 4월 텍사스 휴스턴의 크로거 매장에서 김밥 매장의 잠재력을 발견한 뒤 2년 반만에 직원 14명, 연매출 130억원의 회사로 키워냈습니다. 김 대표는 1987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수많은 실패와 역경 끝에 오늘의 성공을 이뤄냈다고 하는데요.

미국 본토의 식품시장을 정면으로 돌파한 최초의 한국인, '김밥 파는 CEO' 김승호 씨. 그의 아이디어와 열정, 실패와 역경, 끝없는 도전정신을 4월 15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들어봤습니다.

◇ 도시락 형태의 김밥. 하루에 만 개 정도 팔려

▶ 얼마 만에 다시 한국에 오신 거예요?
작년 이맘때쯤이니까 한 1년 됐습니다.
▶ 봄꽃이 아름답죠?
서울에는 벌써 벚꽃이 지기 시작해서 서운하지만, 진달래와 철쭉이 보기 아름답습니다.
▶ 이번엔 어떤 일로 방문하신 겁니까?
일본의 포장재 회사하고 비즈니스건과 책 출판일 등 겸사겸사 오게 됐습니다.
▶ 현재 운영하시는 회사 이름이 < jfe > 인데, 풀 네임이 어떻게 되나요?
< japaneseFood Express > 라고, 인수한 회사입니다. 주력 상품은 김밥이고요.

▶ 우리는 김밥이 너무 익숙한데, 미국 현지 반응은 어떻습니까?
김밥이라고 하면 손으로 집어먹는 작은 사이즈 아닙니까? 그것을 미국에서는 '핑거 푸드'라고 하는데, 미국은 그게 스낵형 음식으로 발전이 되어 있습니다. 또 동양 음식이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특히 한국, 타이, 일본음식이 대표적인 건강 음식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중류층 이상 백인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편입니다.

▶ 중류층이 선호한다면 그 시장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예. 상당합니다. 저희 매장이 주로 고급 주택가 있는 곳에 대부분 들어가 있습니다.
▶ 우리 김밥과 어떤 점이 다릅니까?
포장 방식이 다르고 내용물이 조금 다릅니다. 미국 사람들이 약간 짜고 달게 먹기 때문에 밥의 양념이 거기에 맞춰서 다르게 들어갑니다.

▶ 하루에 어느 정도나 팔리나요?
저희가 도시락 형태로 만들어 파는데 하루에 전체 매장에서 팔리는 양이 거의 만 개 정도입니다. 돈으로는 약 4~5만 불 사이이고, 우리나라 돈으로는 4~5천만 원에 가깝습니다.

◇ 유통업체 < 크로거 > 담당자 만나기까지 10개월 걸려

▶ < 크로거 > 라는 거대 유통 체인망에 얼마의 매장이 있는 겁니까?
저희가 미국 8개 주에 들어가 있는데요, 제가 최근 나올 때쯤만 해도 130개쯤 되었는데, 지금은 139개로 조금 더 늘었습니다.작년에 저희가 1300만불 정도 팔았는데, 올해는 저희가 추정하기로 1700만불 정도 예측하고 있습니다.

▶ 그럼 우리나라 돈으로 160억 정도가 넘는 돈을 김밥만으로 버신 건데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김밥이 상당히 고급 음식으로 인식이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 마케팅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제가 사실 김밥을 개발한 것은 아닙니다. < 크로거 > 매장에 가보니 김밥 형태의 스시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것의 판매방식이나 진열방식을 보니까 개선할 점이 많더라고요. 그것을 개선만 하면 매출이 꽤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아이디어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 크로거 >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을 만나기까지 거의 8개월에서 10개월 정도가 걸렸으니까요.조르고 졸랐더니 나중에는 비서가 귀찮아서 자기 상관에게 떼를 써서 만나게 해주더라고요. 그렇게 만나서 컨셉과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하고,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된 겁니다.

▶ 그렇게 설득을 하시려면, 영어로 충분하게 의사소통이 있으셔야 했겠어요.
설득하기 위해서 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어요. 설득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요구사항과 나의 요구사항이 맞는 것이에요. 즉, 설득은 이해관계입니다. 설득을 통해 내 쪽으로 거래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시간을 없애고 내 시간을 여유롭게 만드는 것이 그 게임의 승패를 가린다고 생각합니다.결국은 돈보다는 시간의 여유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더더욱 그랬고요.

▶ 당시 고작 몇 백 달러 있으셨다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 크로거 > 라는 회사에게 김밥 매장을 만들자고 설득을 할 때, 매장 만드는 비용이 5만 달러, 즉 5천만 원 정도였는데 저는 그 돈이 사실 없었어요. 단지 이 아이디어가 적절히 응용되기만 하면, 상당한 돈을 벌 것이다 라는 것만 알고 있었죠.그래서 그 사람들을 설득해서 짓는 과정까지도 자기네들이 하고, 저는 이후 매출에서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했죠. 그래서 실제로 내 돈이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 그런 일을 이루어내려면 프레젠테이션 얼마나 기막히게 하신 겁니까?
프레젠테이션을 잘한 것은 아니었고, 사실 아까 말씀드린 시간 이야기 조금 디테일하게 하자면요. 지금 이 상황에서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지금 이 프로그램 주도하시는 분은 배 선생님이시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이 주도권을 뺏어오고 싶다면 선생님의 질문에 제가 10초 동안 말 안하고 쳐다보면 됩니다.

그럼 상당히 초조하고 당황스럽겠죠? 그렇게 되면, 그 시간의 주도권이 제게 오는 게 됩니다. 그럼 제 쪽의 시간이 많아지게 되는 상황변이가 오게 되죠. 비슷하게 < 크로거 > 에서도 김밥 만들 의사도 없고, 아이디어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나도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각 매장 마다에 오만 불씩을 들여 몇 십 개의 김밥매장을 만든다는 것이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잘 팔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어도 < 크로거 > 까지 가서 판매할 생각까지는 안한 것이죠.

이 부분에서는 제가 독특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어떻게 이 방식을 이용했냐면, 김밥시장의 가능성을 놓고 < 크로거 > 라는 회사가 다른 회사와 경쟁을 할 때, 먼저 선도되는 아이템들을 이끌어내는 것이 그쪽에서도 이익이 된다고 분명히 설명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김밥 매장을 당장 만들어야겠다는 욕구가 담당자에게 생긴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제 시간이 더 생긴 것이죠. 그 쪽에서는 마치 제가 다른 회사에 가서 이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긴장감이 생기게 되었고, 그럼 그쪽의 시간이 모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 일년에 이백 권 가까운 책 읽어

▶ 독심술에 가까운 그런 능력은 어디서 오신 겁니까? 노하우를 좀 알려주세요.
제가 어릴 때부터 사업체를 보면 개선할 점이나 바꿔야할 문제를 지속적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정해진 시각으로 보지 않는 법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독서입니다. 아직도 독서를 상당히 많이 합니다. 일년에 약 백 권에서 이백 권 이상 책을 읽으니 거의 하루에 한권 정도를 읽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주로 어떤 장르의 책을 보십니까?
여러 분야죠. 흥미 있는 부분이 있으면 거기서부터 유추되는 상당히 많은 분야의 책을 보고 있습니다. 요즘은 제일 관심 있는 쪽은, 수학에서 2, 3, 5 ,7로 표현되는 '소수'있잖아요. 그리고 '리만 가설'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서 그 분야의 책을 보고 있습니다.

▶ 수학과 비즈니스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특별히 비즈니스 상황과 연결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시각의 다양성과 관점을 넓히는 데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작은 문방구나 슈퍼에 가도 '진열을 저렇게 안하고 이렇게 하면 잘 팔릴 텐데'라는 생각들을 하고 다니셨다고 책에 쓰셨던데요.

예.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한 것이 < 크로거 > 에서 처음 김밥을 봤을 때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제가 김밥을 처음에 < 크로거 > 에서 봤을 때 '인라인'이라고, 매장 벽면에 따라 진열하는 방식이 있거든요. 그 인라인쪽 벽장에 사람들이 가다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제가 배운 상식으로는 그게 복도 같은 유통량 많은 데로 장소 이동을 하면 잘 팔릴 것 같았죠. 같은 매장에서도 분명히 장소에 따라 매출이 차이가 나거든요. 큰 식품 매장 안에서도 골든 존과 그렇지 않은 곳의 매출 차이가 1~2배가 아니라 20배에서 10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김밥이라는 아이템이 쇼 비즈니스 같은 성격도 있고, 또 건강식품이라는 이미지도 있어서, 그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와서 자리만 바꿔주면 매출이 기하학적으로 증폭되리라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설명했고, 또 실제로 결과가 생각한대로 나타났다는 것이 이 성공의 요인입니다.

◇ 김밥의 쇼 비즈니스로 폭발적 반응 이끌어

▶ < 크로거 > 에서 언제 당신 아이디어를 사용하겠다고 말을 해주었나요?
일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저희가 만나는데 10개월이 걸렸고, 두 달 정도 일을 진행을 했으니까요. 미국친구들이 새 비즈니스를 하는데 한국 사람들처럼 충동적이지 않아요. 상당히 조사도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이 먼저 해 보는 것을 보고 평가해본 후에 시작을 합니다.그래서 제가 돈을 빌려 임시로 스시바를 지어보았어요. 여기서 스시바는 깁밥 판매대를 말합니다.

제가 '너희 회사가 돈을 투자하기 전에 내가 간단하게 그것을 테스팅하겠다'고 해서 당시 7천 불을 들여 중고 냉장고를 사고, 또 김밥 써는 냉장 시설이 된 도마를 마켓 밖으로 끌어내봤어요. 그랬더니 한주에 삼백 불이던 매출이, 주당 오천 불로 폭발적으로 증가를 한 겁니다. 고객들은 물론이고 < 크로거 > 담당자도 상당히 놀랐습니다.

▶ 그렇게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요인이 무엇입니까?
몇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먼저는 신선도입니다. 거기서 김밥을 실제로 만들어주는 시각효과가 가장 컸죠. 또 쇼적인 성격도 컸습니다. 누드김밥 같은 것이 만들어진 상태를 보면 '저 안에 김을 어떻게 넣었을까'하면서 되게 신비하게 생각을 해요. 또 내용물이 싸인 형태도 신기하고 오이를 밖으로 썰어서 마는 형태도 흔히 보는 형태는 아니잖아요. 그런 식의 쇼 비즈니스적인 성격으로 인해 구경도 하면서 이슈가 돼 버린 겁니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강해서 일부 흑인 고객들은 혐오감까지 느낄 정도였어요. 일부 생선이 들어 있다 보니까 말이죠. 하지만 계속 샘플링을 통해 고정 손님이 늘고, 그런 고정 손님이 계속 모아지다 보니 하나의 체계가 되었어요. 그 손님 층이 또 다른 곳으로 전이되고 하면서, 지금은 신규매장에서 샘플링을 해도 거의 거부감이 없습니다.

▶ 그렇게 일을 시작하신 것이 몇 년 전입니까?
그게 한 3년 되었습니다.
▶ 얼마나 좋으세요?(웃음)
좋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제 시간을 돈을 벌어 살수 있다는 것이에요. 저는 일을 많이 하는 CEO는 아닙니다. 직원들에게 권한을 많이 주고, 관여를 많이 안 합니다.

◇ 87년에 이민, 아버지 매장에서 담배 파는 일부터 시작

▶ 87년도 중앙대학교 다니다 부모님과 같이 미국 이민을 가셨다고요?
제가 대학교를 83년도에 입학하고, 졸업하기 전에 이민을 신청했는데, 이민 비자가 바로 나오면서 바로 이민을 가게 된 것입니다.아버님이 먼저 미국에 가 계셨어요. 저는 원래 공부를 하려고 원하는 대학도 조사하고 그랬는데, 미국 간 다음날부터 바로 아버님이 일하는 가게에서 담배 파는 일부터 시작하게 되었죠.(웃음) 그때 이후로 사실 계속 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 아버지 가게에 만족하지 못하고 큰 야망이 있으셨나 봐요.
제가 사실 장사가 재미있었어요. 손님들이 전혀 구매할 의사가 없이 매장에 들어왔다가, 주인의 의도에 따라 생각 없이 물건을 사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렇게 물건을 파는 데에 상당히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물건이 잘 팔릴까, 어떤 형태로 바꾸면 잘 팔릴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한 편입니다.

▶ '손님을 매장에 1분 머무르게 했더니, 1달러 30센트로 매출이 더 오르더라'는 이야기를 책에 쓰셨는데요.

미국에서 구멍가게만 해서는 이런 것을 적용하기는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 구멍가게를 크게 키우고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욕심이 항상 있었죠. 그래서 마케팅이나 슈퍼마켓에 관련된 책들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많이 뒤져서, 자료들을 많이 모아 놓았습니다. 슈퍼마켓의 구조나 형태, 디스플레이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판매량을 데이터로 많이 모았죠.

◇ 어린 시절 작가가 되고 싶었던 소극적인 아이

▶ 어려서는 꿈이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었는데, 성적이 안 된다고 영어학과로 보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공부하고 싶은걸 못했습니다.어릴 때는 굉장히 조용한 성향이었어요. 학교 때 커튼 뒤에 숨어서 책 읽고, 보면 있으나 없으나 한 아이들이 있잖아요. 이 방송을 듣는 친구들이 저를 기억 못할 것 같은데, 그 정도로 상당히 조용하고 문제 일으키는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 고향은 어디십니까?
태어나기는 충남 장항에서 태어났는데, 서울에서 자랐습니다.
▶ 형제분들도 다 비즈니스를 하시나요?
동생이 둘 있는데, 다 다른 일을 하고 있고, 여동생만 제가 데리고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 이번에 내신 책 이외에 다른 작품 활동을 하시진 않으셨나요?
이 책 이전에 < 좋은 아빠 > 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습니다. 글은 계속해서 쓰는 편이에요.

▶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계십니까?
'러셀'의 책을 좋아합니다. 그분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편입니다. 그분 책 중에 < 게으름에 대한 찬양 > 이라는 책이 있어요. 제가 '게으름'에 대해 어릴 시절 교육 받을 때는, 버스를 타면서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식의 빨라지는 사회 속도에 맞춰 여러 가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법을 배웠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게으른 것이 큰 죄악이 안 된다는 것을 러셀이 저에게 부추긴 꼴이 되었죠.(웃음)저도 일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시간을 농사짓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저는 농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먹고사는 것은 어떻게 하냐고 물으면, 그냥 사업체 하나 있다고 이야기 하죠.

◇ 인근 땅에 농사지으며 닭도 키워. 다음 비즈니스와 연결할 구상

▶ 무슨 농사를 짓고 계신 것입니까?
제가 돈을 벌면 하고 싶었던 것이, 제일 먼저 땅을 사서 내가 먹을 것을 내가 키우는 농사를 짓고 싶었거든요. 현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 김승호 씨는 왠지 무엇을 해도 다음 비즈니스와 연결을 시킬 것 같은데요.
제가 뭘 건드리면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긴 있더라고요.(웃음)저는 그냥 농사를 짓겠다고 지금 휴스턴 인근에 땅을 사서 가꾸고 있는데,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요. 제가 거기에 화초나 양귀비를 많이 심어놓았거든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씨앗을 대부분 다 가져왔고, 미국에 있는 씨앗도 백여 종 넘게 다 뿌려놓았어요. 또 과일 나무도 웬만한 것을 다 심어놓아서, 마치 관광지 비슷하게 되었어요.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꽤 많고, 학습 장소로도 이용될 정도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있어요. 원하지 않는데도 그렇게 발전되면 사업체가 되기도 하겠죠.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닭을 키우는데 저희 개가 키워요. 애초에 병아리를 키울 때 강아지를 같이 집어넣어 그 둘이 같이 자라게 했더니, 야생 짐승들이 잡아갈까봐 개가 닭을 보호하면서 키우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판매를 하되, 포장을 하지 않고 판매하는 방식이 있어요. 고객들이 직접 농장으로 와서 자기들이 직접 따서 수거해서 가져가는 형태에요.

제가 닭을 방사시켜 놓은 상태에서 알을 낳는 자리만 확보를 해 놓으면, 주변의 주부들이 완전한 유기농 계란을 자기들이 직접 주워가는 그런 형태의 놀이시설에 준하는 농장을 만들 계획이 있습니다.

▶ 김밥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셨는데요.
저는 다행히 책도 내고 매스컴의 도움으로 알려졌는데, 제 주변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한국 분들도 많고, 또 반면 재산을 날린 분들도 많습니다.

◇ 이민 11년 동안 모은 돈 하루아침에 날리기도

▶ 개인적으로 어려웠던 때가 있으시죠?
많이 있었죠. 사실은 서너 번 실패를 했죠. 개인적으로 실패를 했다고 인정하면 실패일 텐데, 아직 실패했다고 생각을 안 하면 성공 과정 중의 하나일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실 실패한 적은 없습니다.최근의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유기농 식품회사를 하나 가지고 있었어요. 직원이 한 60여명 되었고 1300평 매장에 각종 유기농 제품을 파는 매장이었는데, 9.11이 터지고 바로 다음날 매출이 반으로 줄더라고요.

그것도 돈 있는 상태에서 인수한 것이 아니라 장사가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인수해서 간신히 끌어올리는 상태였거든요. 근데 그런 일이 터지니 유동 자금이 영향을 받아서 상당히 힘들었어요. 그렇게 겨우 버티는 상태였는데, 회복될 무렵에 시에서 도로 공사 한다고 8개월을 막아놓아서 저희 매장에 오려면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와야 하는 일이 발생한 거예요. 그래서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결국 문을 닫고, 그렇게 그동안 미국에서 있었던 11년 세월을 다 날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날 많이 울었습니다.

▶ 그렇게 빈털터리가 되고 나서 아내는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제가 아내와 4살 차이가 나는데, 그날은 아내가 누나 같더라고요. 그때 울고 등 두드려주고는 그걸로 끝이었어요. 그래서 탁탁 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죠.

▶ 실패 후에 어떤 열등감 같은 것은 없으셨어요?
열등감은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크게 실패하고 나니 무서운 것은 있더라고요. 남자가 실패를 하면, 아내와 가족과 이별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위험을 느낀 적은 있습니다.그 매장 닫을 때 저희 아버님이 작은 구멍가게를 하셨는데, 어느 날 5천 불을 들고 오셨더라고요.

당시에는 저희 매장규모가 커서 한나절 겨우 버틸 수 있는 돈이었는데, 뻔히 문 닫을걸 알고 있었는데도 그걸 갖고 오셨더라고요. 결국 며칠 후에 문을 닫았는데, 그 일로 우리 아버님이 저에게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신감을 주셨어요. 아버님에게 항상 고마운 것이, 이 아들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으셨고, 그 확신이 저에게 전이된 것 같아요.

◇ 처음도 상상력이고, 두 번째도 상상력

▶ 좌절에서 회복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으신가요?
좌절했을 때 회복하기 제일 쉬운 방법이 의외로 육체적인 것에 있습니다. 좌절하면 정신적으로 고독하거든요. 그래서 좌절이나 실패했을 때, 제일 먼저 권하는 것이 바로 운동입니다. 걷기, 달리기, 근육운동, 팔굽혀펴기 등 실제로 제가 그렇게 한 번 호되게 당하고 나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지금도 팔굽혀펴기를 한 번에 300개는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해서 몸이 건강해지면 정신은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재기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또 몸이 건강해지면 의욕이 생기고 뭐든지 욕심이 나더라고요.

▶ 평소에 상상을 많이 하고, 또 상상한 것들을 메모 하는 습관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제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상당히 개인적인 것 일지라고 적어놓고 자주 봅니다. 대부분 금전적인 목표나 부부관계, 아이들과의 관계, 사업하는 동료나 직원 같은 사업체 사람들과의 융화관계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적어놓고 매번 실제로 읽어보고 있어요. 예를 들면 가족관계 같은 경우, 14개를 적어갖고 다니는데요.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사랑한다'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이런 목표를 확실히 가지고 있는 부부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또 상당히 개인적이지만 '성생활이 활력 있고 자유롭다'라든지, '팔뚝은 당당하고 복근은 발달되었다' 이런 식으로 이미지화시킵니다.또 재정적인 부분에서는 '나는 일년 수입이 300만 불이다', '현금재산이 얼마이다'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적어놓습니다. 또 상장된 회사의 경영권을 소유한다든지, 내 책으로 백만 부 팔아보겠다고 상상하고 실제로 적어놓습니다.

이루어진 것은 밑줄 긋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요. 요새 < 시크릿 > 이라는 책이 인기인데, 제가 20년도 더 전에 아내를 만날 때 이 방식을 썼습니다. 사실 < 시크릿 > 은 저의 이야기에요.

▶ 적어놓은 목표설정은 그것으로 끝인가요? 어떻습니까?
대부분 저는 다 이뤄요. 제가 다시 김밥으로 돌아가면 < 크로거 > 와 합의를 하고 난 뒤에도, < 크로거 > 안에서 김밥 파는 회사가 몇 개 더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들어가는 매장을 확보하려면, 경쟁 회사를 구매해야 했어요. 그래서 인수한 회사가 < jfe > 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 인수할 때 제 자본이 불과 몇 천불밖에 없었어요.

그때 CEO가 융자를 해줘서 그 회사를 사는 형태로 구매를 했는데, 4백만 불짜리 비즈니스를 불과 2300불을 들고 들어가 구매를 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어요. 그래도 저는 분명히 그 회사 놓고 상상하면서, '그 회사 인수하겠다' 항상 되새기면서 내 마음을 다잡았고, 그 상태에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냈죠.웃기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 아내가 상당히 미인인데, 제 아내를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봤거든요. 대학교 1학년짜리가 중학생 아이를 보고, 저 여자애가 크면 괜찮은 신부감이 되겠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나중에 크면 저 아이와 결혼하겠다고 혼자 생각을 한 거였어요.

당시 제 아내는 저를 알지도 못한데다, 상당히 인기가 있어서 저 같은 사람은 쳐다도 볼 수 없을 때였는데, 제가 꾸준히 상상을 했어요. 어디서 사진을 얻어 와서 수첩에 넣어 놓고 '얘들아 이게 너희 엄마다'라고 적어놓았어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말이죠. 그렇게 불과 몇 년이 지나니까 어느덧 제 아내가 되어 있더라고요.(웃음)

▶ 그 이미지를 구체화 시키는데 어떤 힘이 필요합니까?
처음도 상상력이고, 두 번째도 상상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을 계속 하게 되면, 거기에 동기부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 강해지고, 그 동기부여 때문에 이룰 수 있는 방편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우연도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복권이 당첨되고 싶다면 복권을 사야하죠. 그렇듯 상상을 한 후에 거기에 맞게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일단 목표설정이 아주 중요합니다.

◇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면 종업원 생활부터 하라

▶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무엇입니까?
'단돈 백 달러 들고 와서, 나중에 성공했다는 이의 성공담을 들어라' 또, '중고차 살돈 오천 불만 가지고 공항에 내려라', '다른데 가서 종업원 생활부터 하라' 이런 말들을 하고 싶습니다. 요새 이민 오시는 분들은 한국분들이 일정자본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오자마자 궂은일보다는 사업체를 인수해서 자리를 잡으시려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실패하시는 거 숱하게 봤습니다. 언어나 환경문제도 익숙지 않아서 종업원이 거꾸로 주인이 되기도 하고요. 비즈니스나 사업을 하고 싶다면 남의 데스크에서부터 일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경험을 갖기 전까지 무모하게 자기 전 재산을 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봅니다.

▶ 김밥에만 매달리실 것 같지는 않는데요.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밥 매장이 일주일에 하나 꼴로 오픈을 하고 있거든요. 김밥이 있는 마켓이 20%정도 밖에 안 되고 아직 80%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 시장이 어디까지 갈지 저희도 많이 궁금합니다.

▶ 행운도 많다고 그러셨는데.
행운이 많았죠. 좋은 가족을 가진 것도 행운이고, 좋은 비즈니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행운이죠. 사실 행운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행운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눈이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행운이 왔을 때 행운을 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 바로 독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는 월~토 오후 4시 5분에 방송된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 김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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