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게렉터(gerecter)님의 블로그에서 퍼 왔습니다.
엊그제 약속 드린대로, 오늘은 한반도 대운하 하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글을 올립니다. 기술적인 문제, 산업적인 문제가 중요한 내용이니 만큼 사실 관계가 잘못된 것 있으면 가차 없이 사소한 것이라도 지적해 주시면 감사히 반영하겠습니다.
1. 꾸숑
워낙 BBK 하나로 물고늘어져 마구 내달린 대통령 선거라서 많이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만, 보다보면, 유인촌이 이명박 당선자를 열심히 따라다닌 것이 보였습니다. 유인촌이야 "전원일기"에서 최불암 둘째 아들 역할로 수십년간 "한반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나이" 분위기로 인기 끌던 양반인데, 이 양반이 이명박 당선자를 따라다닌 이유로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바로 TV연속극 "야망의 세월" 입니다.
(한 명은 대통령 후보, 한 명은 그 졸병인데, 누가 누구인것인지?)
"야망의 세월"은 빈민에서 대기업 사장이 된 이명박 당선자의 성공담을 소재로 해서 지어낸 이야기 입니다. 실제 이명박 당선자의 삶과는 거리가 꽤 먼 이야기 였습니다만, 바로 여기서 유인촌이 이명박 역할을 맡아 연기했던 것입니다. 이 연속극은 꽤 재미나기도 했고, 시어머니-며느리-출생의 비밀 로 이어지는 TV연속극들이 범람하던 가운데 기업 경영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서 신선한 면도 있었습니다. 실제 사건과는 상관 없이 "이명박식 버티기"가 어떤 것인지 아름답게 미화해서 보여주는 면도 지금 돌이켜 보면 재미납니다.
이 TV연속극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조연은 단연 "꾸숑"(프랑스어)이라는 극중 별명으로 나왔던 "최민식"이었습니다. 최민식은 당시 조금씩 쇠락해가는 군산을 떠돌다 흘러들어온 군산 깡패로 나왔습니다. 최민식과 이휘향은 이 연속극에서 미묘한 감정과 강렬한 인상을 폭발시키면서 끈적거리는 일본 영화 같은 향취를 마음껏 발산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왕년의 "꾸숑")
2. 군산
최민식의 극중 고향인 군산에서, 극중의 꾸숑이 활약하던 당시 한가지 재미난 발상이 정부에서 나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밥 굶어 죽지 않을 걱정"을 보장해 줘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었던 지라, 몇몇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쌀이 펑펑 쏟아졌으면 멋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처음 착안된 것이 바로, 군산 앞바다에 둑을 쌓고 바닷물을 다 말라붙도록 해서, 여의도 140배 면적, 1억2천만평의 농토를 만들어내자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좀 더 살펴보면, 이것은 꼭 농토가 필요했다기 보다는 당시 전국 이곳저곳을 여러가지 용도로 개발해 보자는 계획의 한 부분이었고, 검토 결과 너무 위험한 계획이어서 폐기 됩니다.
시간은 흘러흘러, 1987년 그 뜨거웠던, 대통령 선거. 심심하면 100만명을 한 자리에 운집시켜 유세를 펼치는 화려한 난리쇼 정치로 불타오르던 때가 찾아옵니다.
당시 노태우 옹은 자신이 유독 인기 없었던 전라도 지역에서 뭔가 인기를 얻어낼 방법을 고심하게 됩니다. 전라북도 지역은 역사적으로 비옥한 농토 때문에 전국에서 가장 풍요로운 지역이었습니다만, 반대로 산업화 이후에는 공업, 서비스업이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급속히 박탈감을 느끼게 된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일제시대에는 전국에서 가장 활기찬 항구 중에 하나였던 군산은 고깃배들이나 모여드는 작은 항구를 향하여 전락의 길을 한 발짝, 한 발짝, 걷고 있었습니다.
(군산역 구역사)
따라서, 뭐가 되었던지 다른 곳처럼, 건물 짓고, 땅닦고, 사람모으고 해서 산업을 일으키고 그래서 잘살게 되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공사를 하느라 사람들이 몰려 오면, 인근 식당도 잘되고, 공사 결과로 뭔가 큼지 막한 것이 뭐라도 생기면 계속 돈나오는 구멍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노태우 옹과 그 부하들은 "내가 대통령으로 바로 꿈속에 보는 화이트 땅 을 건설해 줄께요~" 라면서 나섰습니다.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꾼다는 계획을 다시 펼쳐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어서 폼잡으면서 몰래 몰래 돈 훔쳐서 5천억원 숨겨놓는 삶을 사느라 너무 바빴는지, 실제로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한 이유인즉슨, 너무 위험한 계획인 것 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돈도 많이 들고, 공사도 어렵고, 멀쩡한 물빠지는 길을 둑으로 막자니 물이 썩어버려서 환경오염도 너무 심할 듯 하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만든 땅에 쌀농사 지어봤자 고생한 만큼 돈이 되겠냐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장 비자금 만들어서 사과상자에 쌓아놓고 전씨성 가진 형님에게도 부지런히 부쳐주고 할 돈도 빠듯할 텐데, 헛돈 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군산 앞바다 바다를 육지로 바꾸겠다고 해놓고 안했습니다.
(그 양반의 훗날)
그런데, 1992년 대통령 선거가 다시 닥쳐오자, 김대중 선생님께서 여당을 공격하기 위해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부가 전라도 발전시키기 위해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겠다고 해놓고 왜 얍삽하게 아직도 안 하고 있느냐, "어서 빨리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꿔라!" 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상대편인 김영삼 후보 역시 전라도에서 한표라도 환심을 살 공약이 필요했던 터라, 대통령 선거가 1년정도 남은 1991년 11월에 급하게 군산 앞바다에 거대한 둑을 쌓는 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다툼은 1995년 처음으로 도지사, 시장 등을 선거로 뽑게 되면서 절정으로 치달았습니다. 어느새, "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거대한 공사"는 주민들에게 돈을 퍼주는 어떤 국책사업의 상징처럼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김영삼당"의 후보였던 강현욱 후보는 자신이 당시 대통령 김영삼 부하니까,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력을 다해서 부탁해서 청와대로부터 직접 매년 3천억원씩 돈을 타오겠다고 했고, "김대중당" 후보였던 유종근 후보는 정부에 의존하면 선거 때마다 휘둘리니까 나는 아예 외국에서 대규모 자금을 빌려와서 단시간안에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겠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침내, 당선된 "김대중당' 후보, 유종근 전북지사는 공약했던 대로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디어, 죽도록 선거전을 치르던 동안에는 묻어 두었던 문제가 새록새록 꽃피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문제란,
"대체, 바다를 육지로 왜 바꾸는데?"
라는 것이었습니다.
(군산 앞바다)
군산 근처가 무슨 땅이 좁은 것도 아니고, 거기 바다가 없어져야 하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해변에 갑자기 거의 부산 만한 평지를 만들어 버린다는 장대무쌍한 계획을 세우기는 했는데, 그 땅을 뭐에 쓸 건지 막막했습니다. 수십년전에 처음 나온 생각이었던 "거기서 쌀농사짓는다" 라는 것은 어느새 흘러간 옛생각이 되고 말았고, 괜히 선거철에 "공사를 앞당긴다" "아니다 내가 더 앞당긴다" 할때, 근처에 공사 본부 지을만한 땅을 두고 땅투기 세력이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하면서 돈놓고 돈먹기를 할 뿐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유종근 지사는, 당시 현대에서 추진하던 "현대 제철소"를 바로 이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꾼 땅에 건설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쇠약해진 군산이 제철소가 있는 포항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북돋우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종근 지사는 전라북도 도민 1백만 서명 운동을 벌여서 120만 명 정도의 서명을 받아내고, 청와대의 당시 총리실, 각종 관계 부처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여러분~ 바다를 육지로 바꾸고 거기에 현대 제철소를 건설해요~" 라고 노래하고 춤추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군산 앞바다에서 "바다를 육지로 바꾼 뒤 거기에 제철소를 짓는다"는 계획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얼마후인 1997년, IMF로 현대가 반토막이 나면서, "현대 제철소"라는 달콤한 환상 같은 계획 자체가 무산되어 모든 것은 일장춘몽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다 할머니들 패물 팔아서 돈 마련하는 처지가 되었누)
악몽의 1997년. IMF 극복의 숙명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등장한 김대중 대통령은 아니나 다를까, "전라북도 발전을 위해서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거대한 공사를 완성하겠다" 고 주장하고 다녔습니다. "대체 그래서 뭐할건데?" 라는 질문에 대해, IMF 악몽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 돈 가져 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었던 만큼, "나는 외국 기업이 공장을 거기에 짓게 하겠다!"고 답을 제시해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자 였을 때, 직접 미국의 다우 코닝 본사에 전화를 걸어, "공장을 한국에 세워 주십쇼" 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다우 코닝이 5조원 규모의 공장 건설 사업을 한다는 화려한 희망이 다시 한 번, 군산 앞바다에 드리웠습니다만, 그러나 이 역시 헛꿈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쯤 되자,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만든 다는 계획이 헛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세상에 공공연히 나돌게 되었습니다. 특히, 비슷한 사업이었던 시화호 사업이 썩은물과 폐수를 엄청나게 발생시키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게 되어 환경단체들이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거기다가, 바다가 육지로 변하면 먹고 살길이 끊기는 갯벌에서 일하는 주민들이 가세 했습니다. 그러면서,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꾼다는 계획은 "환경 파괴 사업"으로 욕을 본격적으로 들어먹기 시작합니다. 이때,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노무현 장관도 반대 입장을 취해, "이상한 짓 그만하고 지금 대강 접자"라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자, 당시 노무현 후보는 말을 바꿉니다. 지난 십여년간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것이 전라북도 경제를 키우는 거대한 공사다" 라고 선전해 왔는데, 갑자기 때려 치운다고 하면, 표를 잃은 듯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는 거대한 공사를 제가 완성해서, 전라북도 도민 여러분께 돈을 벌게 해드리겠어요~ 날 찍어주세욧~"이라고 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말바꾼 것에 대해, 당시 대통령 선거 TV 토론회에서, "왜, 얍삽하게 장관 할때는 반대하다가, 선거철 되니까 찬성하냐?" 는 질문이 나오자, 당시 노무현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 말투를 떠올리며 읽어 주십시오.)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한번 결정된 일을 나는 반대했다 면서 계속 반대만하고 다니면 나라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라는 재기발랄한 대답으로 변명했습니다.
(제가 좀 발랄합니다만은, 그런식으로 말씀하시면, 너무 야박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기 위한 공사는 지금 우리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도 계속 추진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 지구의 모든 바다에 있는 둑 중에서 가장 길다는 33 킬로미터 길이의 둑이 군산 앞바다에 건설되었고, 노무현 대통령과 그 정부는 피 안보고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방법과, 그렇게 만든 육지를 뭐에 써야 욕을 안 들어먹을지 계속 연구하며 머리 싸매며, 지난 5년을 보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국체전 으로 전라북도를 방문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 말투를 떠올리며 읽어 주십시오.) "이 사업은 전라북도의 희망입니다. 많은 투자로 꼭 성공시키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지금까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도, 3조5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들어가는 사업이 되었으며, 현재 정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연인원 1천3백만명(!) 을 고용할 수 있는, 경제를 살리는 사업이라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이렇게 바다를 육지로 바꾼 땅을 어떻게 쓸것이냐에 대해서 가장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사람은 허총재님으로, "이 땅에 2백층 자리 빌딩을 1백개 짓겠다!"(왜?)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바다에서 가장 긴 둑)
이것이, 바로 악명 높은 새만금 사업 입니다.
3. 특급 소방수
2004년 7월.
당시 우리 정부의 경제 정책의 총대장으로 지목 받던 인물은 이헌재 경제부총리 였습니다. 이헌재 부총리는 IMF 당시 머리 아프게 핑핑 돌아가면서 나라가 흔들흔들 하던 경제 문제를 무슨수로든 붙잡아 놓는데 활약했던 인물입니다. 빚내서 빚갚은 거 아니냐, 일시적이 땜질로 막아놓기만 한 것 아니냐 하는 비판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잽싼 대처나, 피부에 느끼기에 뭔가 나라가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기에 경제 위기에 대한 "특급 소방수"라는 별명이 붙어 있던 양반이었습니다.
(이헌재: 불이 났을 경우에, 금리를 올려서, 현금자산가치를 높이면, 실물자산보유가 줄어들고, 그러면 소방차 보유주가 차내의 방화수 자원을 소비하려는 경향성이 커지므로, 시장에 물이 풀리고, 그러면 그렇게 풀린 대량의 물에 의해 불은 타오를 수 없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불이 꺼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 대통령인 노무현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 양반을 다시 데려오려고 노력했습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우리 대통령의 비서관들이 전화통을 붙잡고 사정사정했다는 말도 있고, "이것이야 말로 삼고초려" 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양반은 경제부총리로 돌아와서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우리 정부가 "봐라, 경제 점점 발전하고 있지 않느냐?" 라는 선전을 하기 위한 표와 그래프를 만들어 주는데 공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부동산이었습니다. 2004년 당시에는 아직까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까지는 아니고, "이 중 대부분은 노무현 때문이지 않을까?" 정도인 시대이긴 했지만, 부동산 문제는 피부에 와닿을 정도 였습니다. 부동산 열풍의 외곽지대 정도였던 서울 양천구 모지역이나, 서울 노원구 모지역의 아파트 값들이 갑자기 뛰는가 하면, 엉뚱한 "신도시 개발설" 같은 것이 나돌아 땅투기 열풍이 더욱 거세질 느낌이 감도는 등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시기는 IMF때 사람들이 돈 없을 때, 여윳돈 있는 양반들이 도박걸듯 부동산에 돈들였다가 폭등하는 시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때였기 때문에 부동산 양극화론에 사람들이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한 때였다고 기억합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부동산을 규제해서 부동산을 별볼일 없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을 규제하면 건설 경기가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팍팍 못짓고, 땅을 까뒤집을 건수가 없으면, 건설 업체들이 일감이 없어져서 망하게 됩니다. 그냥 고이 일감이 없어지면 욕이 덜나오겠지만, 어제 까지는 집 지을 수 있었던 땅에, 오늘 갑자기 정부에서 통지가 나와서 "오늘부터는 집지으면 불법" 그래서 일감이 없어지면 열 받습니다. 특히 그 와중에, 정부 눈치 잘보는 몇몇 인간들만 먼저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꼴 보면, 건설업계에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입니다.
("진짜, 너무 야박하지 않습니까?")
더 골치아픈 것은, 건설 산업은 희생시키기 어려운 분야라는 것입니다. 건설업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심장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이제부터, 산업은 고상한 바이오 산업 중심입니다. 건설업은 관두쇼" 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이런 설명도 가능합니다. 지난 5천년간 우리나라 산업의 근간이었던 농업을 FTA한다고 갑자기 때려 치우라고 할 수 없듯이, 건설업도 뭔가 문제 있어 보인다고 갑자기 때려 치우게 할 수 있는 업종은 아닙니다.
더우기 건설업은 고용효과가 좋은 업종 입니다. 공사의 규모와 역할에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참여하게 되고,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학자에서부터, 막노동 일꾼들에게 새참 배달해주는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인력이 다양하게 고용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이 진행되면서 점차적으로 업계의 경험이 늘어 기술적인 파급효과가 있기도 하고, 활발한 금융거래와 투자를 동반하는 업종으로, 경기를 살리고, 작은 업체가 큰 규모로 단시간내에 성장하기에 좋은 업종이기도 합니다. 건설업은 공사에 물자 공급하는 자재 산업, 중장비 산업, 인력들을 위한 요식업, 숙박업 등도 같이 발전시킬 수 있는 효자 업종이었습니다.
(야, 발전이란게 막 산 파헤치고, 막 땅 갈아엎고, 막 건물 짓고, 막막 이런거 아냐?)
그런즉, 건설업 경기는 살리면서, 동시에 부동산은 가라 앉힌다는 문제가 주어지니 골치아픈 것이었습니다. 지방 개발이나, 행정 수도 어쩌고를 하다 보니, 쓸데 없이 땅값 폭등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렇다고 수도권을 개발하자니 그것도 땅값 많이 들고, 지역개발 사업을 안 벌리면,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에 환심을 살 수도 없습니다.
기술산업을 어떻게 유치한다거나, 어떤 경제논리를 도입해서 이렇게 시장을 이끌어간다거나 여러가지 의견과 복합적인 산업개발 방식들에 대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 (심의상 삭제) ... 짓을 할 정도로 술을 많이 퍼먹는 양반들이라 머리가 이상해져서 그런지, 국회의원들과 그 친구들이 모두 이해하고 한가지 정책을 밀어 붙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때, 우리의 특급 소방수, 이헌재 부총리가 신묘한 계략을 제안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단 4개월 안에, 골프장 2백 30개에 대한 허가안을 한방에 다 도장찍어 주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골프장. 우리 정부 사람들과 국회의원들은 바로 꼴까닥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골프장이라면, 산 깎아서 만드는 거니까 딱히 부동산 폭등도 없고, 지방에 건설해서 지역구 주민들에게 생색낼 수 있고, 이런 멋진 계획이! 역시, 이헌재! 특급 소방수 만만세!
이것이 바로, 저 유명한 "골프장 경기부양론" 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골프 인구가 적고, 산지가 많아서 골프장을 짓기에 좋지 않고, 잔디를 자연적으로 자라나게 하기에도 어려운 날씨고, 국토가 좁아서 좋은 골프장 부지를 고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골프 치려면 비가 안오고 맑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비오는 날도 많고, 골프장은 넓이에 비해서 오는 손님이 적고 다른 관광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어서 파급효과도 작습니다. 인구가 조밀해서 골프장 건설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도 더 많이 벌어 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뭐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골프장... 이러면, 뭔가 고급스럽고, 돈 많이 버는 분위기나지 않습니까. 안그래도 금뱃지 다신 분들 멱살잡고 싸우고 밤에는 술퍼먹으며 내가 너희 당에 들어갈까? 니가 우리 당에 들어와라. 니가 가라 하와이 이런 의논하느라 바쁜데, 경제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경제문제나 과학기술문제를 고민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 너무 고민하기 귀찮고 골치아프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런 어려운 것들에 비해 골프장 만들기는 국회의원들이 껌뻑껌뻑 쉽게 이해하고 가슴에 와닿는 혹하는 매우 쉽게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환경단체들이 가장 먼저 반발했고, "대체 골프장 2백개가 갑자기 생기면 무슨 쓸모냐?" 라면서 허탈해 하는 학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곧 "친환경 골프장"을 건설할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는 기술자와 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환경" "자연" 이런거 연구하는 학자들이 갑자기 돈 벌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특급 소방수 께서 제시하신 계획에 대해, 학자들이 어떻게 도와주는 연구결과와 보고서를 만들어 주면, "참잘했어요" 하면서 연구비 타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멀게 보면 칭찬 많이 받아서 한자리 해먹을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꽤 문제 있어 보이는 "친환경 골프장 건설" 계획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친환경 골프장" 과 비슷한 표현으로는 "평화를 위한 전쟁"과 "웰빙 버거" 가 있습니다.
(진정한 친환경 골프장: 정확히 말하면 무환경 골프장. 이 골프장을 위해서 필요한 환경이라봐야, 펜티엄3급 CPU에 Windows XP 정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나온 이야기 중에 가장 화려한 압권은, 역시 "낙후된 전라도에 건설공사를 한다"는 계획의 바람을 타고 나왔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전라북도 강현욱 지사측이 내세운 화려한 계획인즉,
"군산 앞바다를 육지로 바꾸고, 거기에 세계최대 규모의 골프단지를 만들겠다!"
는 것입니다.
이 양반이 제시한 계획에 따르면, 새만금 사업으로 생기는 땅에 5백40홀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합니다. 당연하게도(?) 이것은 우리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바다를 육지로 바꿔서 뭐할지 고민해보자" 면서 열심히 연구했던 원래의 계획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어느날 갑자기 감동 받아서 나온 제안입니다. 그 명성 높은 유시민 전장관 역시 대통령 경선 후보가 되자 "개발 계획 아이디어가 잘 안떠오르는데..." 하다가, "옳다구나!" 하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흉내내어 갑자기 설치다가 욕먹고 들어간바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헌재 부총리의 활약과는 관계 없이 부동산은 폭등하면서도 규제만 심해졌고, 이헌재 부총리는 그러면서 자기는 뒷구멍으로 스스로 부동산 투기해서 돈벌었다는 불명예 의혹에 시달리면서 퇴진했습니다.
4. 선거판
지금 우리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은 몇달 전에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 계획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적이 몇번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사뭇 재밌습니다. "운하는 비경제적이다"라거나, "운하는 환경을 파괴한다" 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초점을 맞춘 부분은 "지금 우리 정부가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방 개발 사업에 무작정 때려 넣은 돈이 운하보다 훨씬 더 많이 때려 넣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미쳐도 제가 좀 더 미쳤다는 그런 이야기지요.)
다시 말해서, 국가적인 애착이 녹아 있는 건설 경기를 끌고 나가면서, 동시에 지방 각지를 개발해서, 지방 주민들, 상인들, 자영업자들에게 경기가 살아나고 돈이 벌리도록 도와 주겠다는 계획은, 우리나라 대통령이라면 지당하게 떠들고 싶다는 것입니다. 골프장을 왜 만드는지, 바다를 왜 육지로 바꾸는지 알 수도 없고, 무슨 쓸모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개발 계획에는 개발 자체로 가치가 되는 해괴한 멋이 있습니다. 특히, 개발 소외 지역으로 지적 받고 있는 전라도와 영남 내륙 지역에서 이런 개발 계획은 언제나 자랑스레 꺼내 놓는 땐스파티 였습니다. (뭔 비유가 이런지는 저도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처음으로 운하 이야기를 꺼내 놓았을 때, 이명박 당선자가 제기한 것은 "한반도 대운하"가 아닌, "경부 운하"라는 말을 더 많이 썼습니다.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물길을 하나 파서, 필요한 경우, 배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갈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발상이 나온 결론은 비교적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큰 공사를 하고, 전국적으로 지방각처에 걸쳐지는 공사를 하고, 불필요하게 부동산 값을 충동질 하지 않는 공사를 하면서, 동시에 포장해서 선전하기 좋도록 한가지 틀에서 설명할 수 있는 공사가 어떤게 있을지 상상해 본 것입니다.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하면, 평소에 별 쓸모 없는 아무것도 없는 땅을 사서는, 거기에 물길을 트는 것 정도가 딱 적합합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적어도 홍보해온 내용만 놓고보면, "건설 경기 부양과 국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경부 운하를 일단 파놓고, 경부 운하가 생기고 나면, 그것을 써서 유리한 사람들이 차차 쓰면 딱히 나쁠 것은 없지 않느냐. 분명히 수요는 있을 것이다." 정도 였습니다. 말하자면, 별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국책 사업으로서, 일단 한 번 벌여보자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뭐 이런 분위기로 살짝 가볍게 슬며시 조금만: 사진은 섬나라인 영국에 건설되어 있는 운하)
"경부 운하"가 "한반도 대운하"로 발전을 하고, 그 내용이 완전히 재정비 된 것은 바로 박근혜 전대표와 이명박 당선자가 경선과정에서 정책대결을 벌이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놀랍게도, 진짜 반대파인 정동영 후보측에서는 "대운하는 재앙이다" 정도의 추상적인 이야기만 꺼냈을 뿐, 정확하게 조목조목 비판하지도 않았고, 대응되는 개발 공약을 주장해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인터넷에는 대운하를 비판하는 만화가 끊임없이 복사되어 돌아다니고, 모 언론사가 독일 사람하고 나눈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명박 당선자측이 본격적인 선거전 이후에 제시한 "한반도 대운하" 개발안을 한 번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은 옛날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TV토론 당시, "운하는 물류 목적도 있지만 친환경 관광 목적도 크다"라는 말을 꺼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환경 관광"과 운하에 관한 이야기는 이 TV방영 이후에나 본격적인 화제거리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동영 후보측에서 제대로 학자들과 기술자들과 힘을 모아 비판하려고 작심했었다면 이런 점은 진작에 간파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대운하 상상도: 한나라당 담당자가, "여기 좀 관광 이런 느낌도 나는 그림으로 그려야죠." 라고 삽화가에게 말하자, 삽화 그리던 사람이 사흘밤낮 고민하다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라, 관광이다" 라면서 그려넣은 듯한, "놀이동산"을 그림 우측 하단에서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의 골자는 그저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물길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국의 모든 강을 배가 다닐 수 있도록 개조하는 계획입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제대로 말하자면, "한반도 대운하"는 "운하 건설 사업"이 아니라, "종합적인 내륙 수운 건설 사업" 이라고 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빈땅에 물 흐르는 물길을 파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강을 여러가지로 개조해서 배가 다니기 좋게 바꾸는 계획이 요점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한 여러 방안과 다양한 기술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일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요목조목 기획된 까닭은, 경선 당시 "한반도에 운하가 불필요한 이유"에 대해 많은 지적을 받은 부분을, 방어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보강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처음에 "경부 운하" 계획이 나왔을 때만해도, 환경문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운하가 친환경적인것인냥 포장할 수 있을 정도로 개조 되었습니다.
(싱거운 문답:
"반도 국가에서 뭔 놈의 운하야?"
"그럼 운하의 도시 베니스는 이탈리아에 있는게 아니라, 무슨 러시아 대륙 복판에 있냐?")
5. 땅박이
한반도 대운하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 강들은 여름철이 되면 집중 호우로 홍수가 나고, 강바닥에 모래가 많이 깔려 있어서 수심도 얕고, 산이 많아서 강이 빠르고 가파르게 흐르므로 배가 다니기 나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국의 주요 강들에 각종 설비와 장치를 달고, 강바닥을 파내고, 물길을 조절해서 항상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강물이 충분히 흐를 수 있을 정도로 인공적으로 바꿔버린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국 주요 강들의 모든 흐름에 대해서 인위적인 조절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막나가는 괴이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나라 처럼 인구가 극도로 조밀한 나라에서는 미친 짓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1년 내내 항상 주요 강유역의 수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강 전체를 제정비하고, 강의 수질과 강 주변의 생태계를 위한 모든 것을 인공적으로 건설해 버리면,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그게 홍수나 가뭄에 대해 더 안정적인 대비라고 느끼는 심리가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여름철 집중강우 때 낙동강에는 상류측에서 많은 모래와 진흙, 쓰레기 따위가 하류지역에 끝없이 밀려와 쌓이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가뭄이 생기면 물부족 현상이 갑자기 일어나거나, 그래서 갑자기 수질이 나빠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 작업은 낙동강 바닥에 모래가 쌓이는 현상이라든가, 갑자기 비가 안내려서 수위가 낮아지는 경우에 대해 최대한의 조절 대책을 건설해서 강 여기저기 발라 놓게 됩니다.
(태풍 매미에 습격 당한 낙동강)
강에 다리가 많이 건설되어 있는데 배가 어떻게 다니냐 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이런 류의 다잡아 뜯어 고치자는 계획은 거칠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다리 중에는 노후한 다리, 부실공사된 다리가 많은데, 이 기회에 필요한 것은 싹 뜯어 고쳐 정비해 놓자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운하 건설에는 삽 뜨는 사람만 있는데 무슨 고용효과가 있느냐"는 이야기는 가벼운 비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운하에서 가장 중요한 공사인 갑문 건설 같은 것은 전기 설비와 기계 장치에서, 수문학을 정교하게 이용하는 설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이 포괄되는 종합적인 사업입니다. 게다가 어차피 운하는 지방 경기 부양을 위한 것이지 "청년 실업" 문제와는 한 단계 거리가 있는 대책이라는 답변도 있습니다.
요컨데, 댐건설이 댐 주변과 강에 연결된 거대 도시 하나를 위한 사업이라면, 한반도 대운하는 한반도 각지의 강 전체를 조종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생태 보존을 중시하는 뉴질랜드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는 꿈꾸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국민의 다수가 규격화된 인공도시라 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이런 문화로 살아가는 국민들이라면 누군가 한 번 마음 먹어 볼 만한 일이기는 합니다. 파급효과 면에서도 비슷한 이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강 유역에는 경치 좋은 곳이 꽤 있는데, 그런 곳이 고향 사람들만 휴가철에 텐트치러 가는곳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관광시설로 계속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사는 법: 여행 안내책자 론리 플래닛 에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여행을 가면, 잠실 아파트 단지에 가서 사람들이 희한한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집들을 구경해 보라... 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전라도에 가서, 한반도 대운하 중에서 "광주에서 목포로 나가는 영산강 운하를 가장 먼저 건설하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선거철이면 언제나 있는 전라도에 대한 선심성 개발 공약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실제로 이상의 기준에서보면, 영산강 운하가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서 가장 홍보하기 좋은 곳입니다.
현재 광주를 비롯한 영산강권이 가진 최악의 문제는 수질이 매우 나쁘다는 것입니다. 영산강은 이미 오염이 너무 심해서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강입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강 근처에 특별히 고려해야할만한 대규모 시설이나 대도시도 적은 편입니다. 그냥 배가 다닐 수 있게 강만 좀 깊게 하고, 배가 못지나갈만한 구역만 좀 땅파서 정리하면 비교적 간단하게 "영산강 운하"는 완성됩니다.
"경부 운하"가 발전한 "한반도 대운하"의 특징도 영산강 운하에서 가장 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현재 영산강 수질 개선에 투입되는 국비는 1천억원 대 입니다.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서 수질 개선을 위한 건설 사업에 투입하기로 배정해 놓은 돈은 그 20배인 2조원입니다. 강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관리하고, 대규모 예산을 동원해서 강의 수질 개선을 위한 토목공사를 일괄적으로 정비해버리면, 영산강 수질은 개선 되게 됩니다. 영산강에 맑은 물이 흐르고, 건설경기가 끓어오르고, 배가 오가게 되고, 관광할 장소도 두어곳 생기면, 적어도 영산강 운하는 지지를 받을 만한 꽤 좋은 요건을 갖추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산강)
한반도 대운하 계획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환경 문제 입니다. 운하의 효율성 문제야, 배후 관광 사업 육성 계획이나 "삶의 질"을 운운한다든가, 아니면 경기 부양을 위해 그냥 풀어버리는 돈이라는 입장으로 접근하면 둘러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 대운하 건설로 각 지역의 자연환경이 급변 하리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건설 후라면 몰라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피하는 방법은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대운하 계획의 핵심은 강바닥을 파내서 강을 깊게 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강은 문제 있는 수준으로 흙탕물이 되어버릴 위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산강 운하는 이미 상수원으로 사용할 수 없는 강으로 오염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점에서도 "어차피 버린 강인데"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산강 운하 계획은, 어쩌면, 광주와 목포 시민에게 오래간만에 "뭔가 확 달라지고 좋아졌다"라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점입니다. 이명박 당선자에게 가장 득이 되는 부분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주 인근의 영산강)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추상적으로 보이는 경제 정책이나, 형체가 보이지 않는 제도 정책이 아닙니다. 그 수행과정이 지역주민들의 눈으로 뻔히 보이는 건설 계획입니다. 한번 생기고 나면 거의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사회 간접 자본입니다. 이명박 당선자는 특유의 안전모 쓰고 작업복 입은 모습으로 대운하 건설 현장 곳곳을 누비게 될 것입니다. 누가 봐도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특히나, 이명박 당선자는 그런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외모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 영화에서 가장 심한 악당으로 나오는 3대 배역은 공산당/친일파/역적 입니다. 한 40년쯤 전에 박 모 장군은 한 몸에 이 세가지에 다 연루된 인간이었으면서도, 죽어라 전국 각지 건설 현장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고, 덕분에, 아직까지도 그 인기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타날 새 대통령은 공산당도 아니고, 친일파도 아니고, 역적도 아닙니다. 한반도 대운하가 건설되면, 거기서 배 몇 척 떠다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단지 강유역을 대정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역주민들에게는 좋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반도의 모든 강들은 앞으로 영원히 "이명박" "이명박" "이명박" 하고 스스로 노래하며 흐르는 듯 보일 것입니다.
(건설업인 만큼 아파트 광고 노래 처럼: 어~~우우우울~리이임~)
심각한 문제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강유역을 따라 전국 주요 도시권 전체를 개발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반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영산강 수질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2조원을 때려 넣는다고 하는데, 광주와 나주, 목포의 국회의원이 대놓고 반대하기 어렵습니다. 노태우 옹이 새만금 사업을 시작했지만, 김대중 전대통령이 후보시절에는 도리어 왜 안하냐고 따진 것을 보면, 이런 류의 지역 개발 사업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대놓고 반대하기는 좀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 시절에 반대측 후보가 나서서, 전국민적인 반대 의식을 꿋꿋이 심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역구 의원이라도 당당하게 반대할 수 있도록 설득해 놓았어야 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 파괴 입니다. 천성산 도롱뇽 때문에 고속철도 건설을 막는다는 류의 환경보호론은, 한반도 대운하 계획의 틀에서 보면, 웃음도 잘 안나올만한 일니다.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강의 모든 흐름을 조절하고, 수만년 동안 떨어져 있던 강들을 서로 연결시켜 통하게 해 버리는 계획이라서, 비판할 요소는 군데군데 끝없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소중한 천성산, 소중한 도롱뇽)
(에헤헤헤, 스님, 제가 한약방에서 도롱뇽 천마리 사다드릴 테니까 다 들고 절로 돌아가십쇼.)
그 환경파괴가 얼마나 심할 것인지, 잘 연구해서 상대편 대통령 후보가 국민 모두에게 살벌하게 밝혀야 했습니다. 하다못해 그래야 운하가 실패했을때 "책임론" 운운하면서 표 얻기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도권에 주로 밀집해 있는 환경단체들과 관계 시민들이 나서서 열심히 반대 운동을 한다고 해 봤자, 개발 호재를 기다리는 지방 사업체와 주민들로서는 "자기들 잘사니까 말 쉽게한다"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수도권-지방 갈등의 단초로 비칠 우려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내가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같이 노래나 부르면서 할까요? 비~비~케이~~ 비비케이~ 비~비~케이~)
한가지 정치적인 대응방법으로, 한나라당 내부의 계파 갈등과 이합집산을 이용하면서, 의도적인 세력 가르기의 명분으로 "운하 특별법"을 둘러싸고 반대파와 찬성파로 분열되어 나뉘도록 가는 구도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내건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 단순한 구상에서 나온 공약이 아니라, 진심으로 염원하고, 이미 검토와 계획을 마친 숙원사업이라면, 그러한 정치적 이합집산 구도도 어떤식으로 먹힐지도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6. 건담
정치적인 면이나, 환경파괴, 실제로 얻어질 편익, 감당할 비용. 등등의 사업적인 면들을 모두 제거하고 봐도, 한반도 대운하에는 엄청나게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한반도 대운하를 실제로 착공한다고 하면,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어떻게 나올지 정말로 호기심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불가능한 공사라고 불리우는, 문경새재 돌파 입니다.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날아다니는 새도 쉬어 간다고 해서, 문경새재라고 불리워 왔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대운하 계획에는 바로 이 구간에 배가 지나가게 한다는 그야말로 가히 SF 적인 발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낙동강과 한강을 이곳 산에서 접속시킨 다는 것입니다. 험한 곳이니까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이곳에서 지켜야 했다는 말을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알고 있는 바로 그 지역에, 어떻게든 강물을 흐르게 해서 배가 지나가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강이 바다로 흐르는데, 강을 산으로 흐르게 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바로 문경새재 돌파 구간 입니다.
문경새재는 그냥 산 입니다. 그것도 꼭대기 높이까지 치면 해발 1100 미터의 높은 산 입니다. 대체, 이 지역에 어떻게 배가 지나가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 현재까지 홍보된 계획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배가 문경새재 바로 아래의 강까지 옵니다.
2. 배를 거대한 강철 수조 속에 물과 함께 통째로 집어 넣습니다.
3. 거대한 강철 수조를, 엘레베이터 장치를 이용하여, 건물 10층 높이로 끌어 올립니다.
4. 거대한 강철 수조 속에서 배가 나옵니다.
5. 산을 관통하는 거대 터널로 배가 진입합니다.
6. 4킬로미터의 터널을 통과합니다.
7.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물을 채워 두고 이곳을 배가 지나갑니다.
8. 다시 산에 뚫어 놓은 22킬로미터에 이르는 길고 거대한 터널로 배가 진입니다.
9. 터널에서 배가 나오면, 다시 배를 물과 함께 통째로 거대한 강철 수조에 집어 넣습니다.
10. 강철 수조를 엘레베이터 장치를 이용하여, 건물 10층 높이만큼 서서히 내려 오도록 합니다.
11. 이렇게 해서, 배가 문경새재 반대편 강까지 안착!
(운하 건설에서 어려운 공사라고 해봐야 이정도 였는데)
배를 엘레베이터 장치에 물과 함께 싣고 움직이는 장치가 기존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높이나, 터널 통과로 직결되는 운행 형태, 규모를 살펴 본다면, 가히 세계 최강 수준의 고난도 공사입니다. 더군다나, 터널이 무척 좁고, 엘레베이터 장치를 빨리빨리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한 번에 한 척씩 서서히 통과해야 하고, 반대쪽에서는 반대편 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외국에 있는 배를 들어올리는 엘레베이터 장치)
때문에 시간상으로도, 하루 24시간 동안, 이 문경새재를 돌파해서 지나갈 수 있는 배는 수척에서 십수척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시설을 유지 보수 하고, 엘레베이터를 움직일 때 드는 막대한 에너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은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대충이라도 어떻게 문경새재를 돌파하는 방안을 구체적인 설계로 보여준다면, 그 설계도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재미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획 자체의 장쾌하고 과감한 면만 따지면, 도시만큼 거대한 인공위성을 띄워서 그 안에서 사람들이 학교도 짓고 건물도 짓고 살아간다는 스페이스 콜로니 계획이나, 인간의 반사신경 동작 만큼 빠르게 반응하는 두 발 달린 로봇을 만들어서 전투기나 미사일과 맞서 싸운다는 모빌슈츠 로봇 개발 계획 못지 않게 흥미진진한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페이스 콜로니)
만약 이런 것을 건설할 수 있다면, 단연 단군 이래 최대의 거대 구조물이 될 것이며, 만약 "명박교" 라는 종교가 생긴다면, 무엇보다 그 앞에 와서 기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홍보를 위한 홍보가 아니라, 진심으로 공개한 계획이라고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한반도 대운하 계획은 우리나라를 좀 다른 성격의 나라로 뜯어 고쳐 버리는 장대한 계획입니다. 쌀농사 짓고, 사람 사는 마을 근처의 산에는 산성이 있다는 점이 수천년동안 나라의 상징으로 내려왔던 한반도에서, 이제는 "운하의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식이 되도록 아예 확 다 뜯어 고쳐버리는 발상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몇백년쯤 지나서 명박교 라는 종교가 안생기라는 법도 없습니다.
물론, 실패하면, 작살나게 비싼, 대통령의 장난감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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