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떨결 씨는 올해 31살이다. 쌓여가는 것은 나이, 담배꽁초, 퇴짜 맞은 입사지원서이다. 그의 신분이 현재 청년 실업자란 얘기다. 얼떨결 씨는 그래서 ‘그 후보’를 찍기로 했다.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경제를 살려줄 것 같은 기대 때문이다. 가족들도 얼떨결 씨와 같은 의견이었다. 물론 여기저기서 ‘그 후보’에 대한 추문을 거론한다. 하지만 얼떨결 씨의 초지일관 신념은 “닥치고 ‘그 후보’를 밀겠다.”이다. ‘그 후보’는 당선 됐다. 그리고 ‘그 후보’가 속한 당이 이듬 해 봄에 있었던 총선에서도 싹쓸이했다.
봄이 정말 오긴 온 모양이다. 기업마다 인사채용 공고가 난다. 얼떨결 씨는 그 덕에 우량 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정규직으로. 얼떨결 씨는 ‘그 대통령’을 신 다음으로 신봉하기로 했다. 대선 전에 미처 들지 못했던 ‘그 대통령’ 팬클럽에 들어갔다. 탁구 동호회 총무도 맡았다. 틈틈이 모아둔 돈으로 주식도 샀다. 연일 계속되는 규제 해제 정책에 주가는 폭등했다. 얼떨결 씨도 ‘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염두에 두고 건설주를 사뒀는데 나름대로 재미를 봤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요 기업 사옥이 입주한 건물 곳곳에는 ‘부당 해고 획책하는 사측은 자폭하라’ 이런 플래카드를 걸고 단식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보인다. 얼떨결 씨는 “저런 찌질이들, 꼭 일 못하는 것들이 저래.” 이러면서 혀를 찬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평소에 <한겨레>만 읽고, 시간만 되면 노조 설립 방법을 알려주는 사이트에 들어가던 김모 대리가 ‘대기발령’ 당했다는 공고가 붙었다. 내부는 어수선했다. 얼떨결 씨는 좀 심하다 싶었다. 하지만 김모 대리를 지지하는 직원들이 급히 마련한 술자리에 가서는 연신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있는 것 아니냐’며 열변을 토했다. 다른 직원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안주 - 땅콩, 오징어, 김 등을 씹고 있었지만 표정은 하나였다. 입 안에 ‘X’이 들어 있는 듯한.
다음날. 박 전무가 불러, “이것 봐, 얼떨결 씨, 속 괜찮아?”라고 묻는다. “괜찮다.”고 했다. 이상했다. ‘어떻게 내가 술 마신 것을 알았을까’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박 전무가 계속 묻는다. “그 자리에 누구 누구 참석했어?”라고. 답을 회피하는 게 더 이상할 것 같아 다 얘기했다. 박 전무가 대뜸 점심을 같이하자고 한다. 따라갔다. 그 자리에서 박 전무는 반주도 시켰다. 취기에 녹아버린 얼떨결 씨는 전날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다 해버렸다.
그리고 또 다음날. 회사에 또 공시가 붙었다. 술자리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대기발령, 한직, 지방발령 이런 식으로 뿔뿔이 흩어진 것이었다. 김 대리는 아예 해고가 돼 버렸다. 그러나 이들이 쓴 잔을 마시는 사이에 입사 3개월 차인 얼떨결 씨는 팀장이 됐다. 영문도 모른 얼떨결 씨. 모든 직원들의 차가운 눈빛에서 자신의 처지를 직감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얼떨결 씨는 사내 왕따가 돼 버렸다. 그 술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사표 내고 모두 나갈 때까지인 6개월 동안 말이다.
그로부터 4개월 후. 갑자기 직제에 없던 실장 자리가 생겼다. 또 부장도 새로 부임한다고 한다. 전무와 얼떨결 팀장 사이에 두 개의 자리가 생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 앉는다는 사람들은 얼떨결 팀장 본인 보다 나이가 어리며 경력이 일천했다. 이 둘이 오기 전까지 나름대로 사내 실세가 되는가 싶었던 얼떨결 씨. 화가 났다. 박 전무를 찾아가 따졌다. 박 전무, 처음에는 ‘그런 사연이 있다’며 얼버무린다.
이 정도로는 얼떨결 씨의 분이 풀릴 리 없다. 새 실장, 새 부장 첫 출근 기념으로 사장이 베푼 만찬 자리에서 얼떨결 씨는 작정하고 술을 연신 원 샷 하더니 끝내 일을 벌였다. 사장 앞에 다가가 큰소리로 “사장님! 그러는 게 아닙니다. 회사가 사람 귀한 줄 알아야지. 제가 팀장 자리에 얼마나 고생해서 오른 줄 아십니까?”라고 떠들었다. 사장, 그 순간만은 허허실실이었다. 하지만 곧 “이 친구 취했구만”이라고 하더니 자리를 피한다. 그로부터 얼떨결 씨의 필름은 끊기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얼떨결 씨는 ‘면 팀장, 명 대기발령 얼떨결’이라는 인사공시를 취기가 덜 꺼진 눈으로 바라봤다. 얼굴을 꼬집어도 공시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장 전무실로 달려갔지만 비서가 막는다. “전무님이 바쁘시다”는 이유로 말이다. 사연을 알고 보니 새 실장은 사장의 아들, 새 부장은 회장의 조카였다. 그렇다. 사장은 아들에게 넘겨주기 위해 애송이지만 우격다짐으로 실장 자리에 앉혔다. 과거에는 편법, 불법이었지만 그 정권 들어 무제한 합법이 돼 버린 순환출자를 통해 승계 작업은 착실히 진행 중이었다. 얼떨결 씨는 “‘그 대통령’께서 하시면 무조건 옳습니다.”라고 외쳤던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싶어졌다.
전무실에서 사무실로 오는 사이, 자기 뒤에서 몰래 실소를 흘리는 직원을 여럿 느꼈다. 얼떨결 씨는 그날만 다섯 번 사표를 썼다. 물론 그 사표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래, 더러워도 참자.” 이런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잠시 후. 전화 한 통이 왔다. 인사과라고 한다. “내일부터 경비로 근무하셔야겠습니다.”라는 짧고 차가운 한마디였다. 참을 수 없었다. 얼떨결 씨는 인사과로 내려가 과장의 멱살을 잡았다. 3시간 뒤. 상관 폭행 이유로 얼떨결 씨는 해고 조치됐다. 얼떨결 씨는 회사 문을 나오기가 무섭게 노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정규직이 이렇게 쉽게 잘릴 수 있냐고” 말이다. 노동사무소는 “이 정권 들어 바뀐 노동법에 따르면, 그렇다.”라고 했다. 얼떨결 씨의 발길은 포장마차로 향했다.
오늘도 또다시 구인 사이트에 들러 이 곳 저 곳 서류를 넣어본다. 그러나 서류 전형조차 통과하지 않는다. 그렇게 10개월. 그는 소문처럼 나돌았던 ‘블랙리스트’가 실존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거기에 본인의 이름도 끼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이 덜컥 들었다. 이런 가운데 상식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펼쳐든 신문에는 3불 정책이 사라져 명문대는 온통 강남 부유층 자제들 판이 됐고, 해고된 노동자, 개방 여파로 극빈층이 된 농민, 특권층에 밀려 실업 상태에 직면한 학생들이 연신 도심에서 ‘생존권 보장’을 외치며 시위를 하고 있고, 자본가들은 은행 빚을 제 주머니인양 끌어다 쓰고 있고, 권력층 인사들이 연일 비리혐의로 잡혀 들어갔다는 내용이 실렸다.
얼떨결 씨가 꿈꾸던 나라에는 특권층의, 특권층에 의한, 특권층을 위한 공교육만이 있었고,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의 생존기반 붕괴, 학생의 취업 노예화, 자본가의 무한한 특권, 무소불위한 권력의 횡포, 자본가의 무한한 헤게모니만 있었을 뿐이다. 얼떨결 씨가 지지했던 ‘그 후보’의 공약 “경제를 살리겠다.”는 실은 “수구 기득권층의 특권을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얼떨결 씨는 자신의 무지에 가슴을 칠뿐이다. 그러나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김용민 /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