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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풍파/일상 이야기

당당히 혼자 밥 먹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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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5&article_id=0000680545§ion_id=103&menu_id=103

“혼자 식사하는 것 말야. 그렇게 하려면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해”
영화 ‘사랑이 다시 올 때’(Hope Floats)에서 저스틴은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있던 버디를 만나 이렇게 말한다. 학창시절에 자기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버디가 혼자 식사하는 것이 안쓰러워 보였던가 보다.

그렇다.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것은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함께 밥먹을 사람도 없나’하고 쳐다보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나홀로 식사’를 하더라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나 샌드위치, 아니면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김밥으로 그냥 때우는 경우가 많다. 혼자 밥 먹는 사람에 대해 ‘사회적 낙오자’ ‘우울증 환자’ ‘왕따’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쳐다보고 속으로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다. 남자가 혼자 먹는 것은 간혹 멋있을 때가 있지만 여자가 혼자 먹는 것은 불쌍해 보인다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점심 시간이 다가오면 직장인들은 특별한 약속이 없을 경우 ‘회원 모집’을 하러 다닌다. ‘나홀로 식사 기피증’ 환자들이다. 정오가 되면 약속 없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갑자기 생긴 ‘약속’이라 예약을 했을 리 없으니 붐비는 식당 입구에서 줄을 서게 마련이다. 줄서기에서 주문, 식사까지 족히 40~50분은 걸린다. 일행 중에 밥을 천천히 먹는 사람이라도 끼어있으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담소를 나누는 것은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모여 식사한다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차라리 혼자 먹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줄서기 하다가 자기 차례가 와서 식당에 들어서더라도 한 명에게 4인용 식탁을 몽땅 내주는 경우는 없다. “한 명인데 자리 없습니까”라고 하면 2명이 식사 중인 테이블에 합석하라고 다그친다. 모르는 사람 앞에 놓고 밥 먹기 정말 불편하다. 남대문시장에 있는 닭곰탕집 ‘강원집 닭진미’는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나 택배 배달원들이 혼자 와서 식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처음부터 합석은 각오해야 하지만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아 불편한 시선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합석을 강요당하는 것보단 낫지만 텅빈 테이블에 혼자 앉아 밥 먹는, 창피스럽다 못해 무섭기까지 한 경험을 할 바에야 아예 식사를 건너 뛰겠다는 사람도 있다.

외국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혼자 먹는 게 두려워 아침은 물론 저녁식사까지 호텔의 자기 방에서 해결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쯤되면 자주 이용하는 호텔의 룸 서비스 메뉴 정도는 훤히 외울 정도다. 하지만 외국인이 혼자 식당에서 밥 먹을 때는 당연히 비즈니스 여행 중이라고 생각하니까 별 문제 없다.

혼자 식사하기가 왜 두려운 걸까. 마치 죄인처럼 허겁지겁 먹다가 배탈이라도 나거나, 친구나 동료ㆍ가족과 함께 온 다른 손님들이 자기를 불쌍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주인과 종업원이 자기를 푸대접할까 봐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사실 다른 손님들은 옆 테이블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자기들끼리 먹고 마시고 떠들기에 바쁘다.

1인 식문화가 발달한 외국의 영향에다 개인주의적 성향의 강세, 여기에 높은 이혼률까지 가세한 때문인지 최근 국내에서도 ‘나홀로 식사’족이 늘고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다. 특히 혼자 외국 여행을 할 때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에선‘뉴욕에서 혼자 식사하기’라는 가이드북까지 나왔다. 맥그로힐 출판사에서 나온 ‘혼자서 식사하기’(Table for One) 시리즈는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에서 혼자 식사하기 좋은 식당을 안내해준다. ‘솔로 다이너’(solo diner)를 위한 정보를 담은 웹사이트(www. solodining.com)도 있다. 미국서 매년 85만개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음식 중 약 8%를 ‘나홀로 식사족’이 먹는다는 통계도 나와있다. 아예 DVD 플레이어와 헤드폰으로 무장하고 혼자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도 있다. 테이블마다 TV 스크린과 헤드폰을 구비해 둔 고급 호텔 레스토랑도 있다.

일본에서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커리어 우먼들 사이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도쿄 신주쿠에는 2004년 ‘테이블 포 원(Table for One)’이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www.solo-dining.jp). 1명 또는 2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 뿐인 식당이다.

1960년대 영국의 저명한 사업가 누바 굴벤키언은 “만찬 파티를 위한 최고의 인원수는 2명이다. 내 자신과 훌륭한 수석 웨이터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평론가나 음식 칼럼니스트들은 대개 혼자 식사를 한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다. 음식 칼럼니스트 크라리사 하이먼(Clarissa Hyman)은 “혼자 밥 먹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레스토랑의 수준이 결정된다. 혼자 온 손님을 어두운 구석에 몰아 넣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레스토랑이라면 수준 이하임에 분명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여럿이 함께 (4인용 테이블에 4명이 빽빽하게 앉아) 식사하는 것은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에 탑승한 것과 같고 2인(또는 4인용) 테이블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은 같은 가격으로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한 것과 같다고도 말한다.

혼자 널찍한 테이블을 차지하는 것은 정말 쾌적하고 황홀한 경험이다. 평소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할 때는 대화에 신경쓰느라 음식 맛도 제대로 못 보았던 사람에게는 혼자 식사하는 것이 음식에 집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철저히 자신에게 스스로 봉사하는 시간인 셈이다. 모든 게 분주하고 바삐 돌아가는 도시 생활에서 골똘히 혼자 뭔가 생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나홀로 식사는 정말 멋진 경험이자 한 번 시도해 볼만한 사치스런 도전이다.

레스토랑에서도 혼자 식사하러 오는 사람들을 푸대접할 게 아니라 단체 손님과 똑같이 친절하게 대해줘야 한다. 그 손님이 나중에 언젠가는 여러 명을 데리고 식당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즈니스나 데이트 같은 다른 목적을 동반하지 않고 오로지 식사를 하기 위해 온 사람이다. 한끼 간단히 때우려고 온 게 아니라 제대로 한번 음식을 즐기기 위해 온 사람이다. 옆 사람과의 대화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맛보기에 전념할 터이니 음식에 대해 더 까다로운 판단을 할 것이고, 식사가 마음에 든다면 다음에 혼자든 여럿이든 다시 와서 그 집 음식을 즐길 것이다.

‘나홀로 식사’하기에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다.

◇ 테이블과 바(또는 카운터)가 함께 있는 식당이라면 (처음엔) 테이블이 아닌 바(또는 카운터)를 선택한다. 2인용 테이블은 1인용 테이블로도 훌륭하다.

◇ 스태프(바텐더, 웨이터)와 대화를 나누면서 얼굴을 익히고 다음에 와서 아는 체하면 불편한 느낌이 줄어든다.

◇ 회전 초밥집을 이용한다. 회전초밥집은 4명 이상이 가면 대화가 불가능하다. 혼자 먹는 게 매우 자연스러운 분위기이며 혼자 가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 고급 식당은 가지 않는다. 고급식당은 너무 조용하고 커플들로 가득차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해 보인다.

◇ 잡지, 책, 메모장을 들고 가서 식사를 하면서 뭔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좋다. 읽을 거리를 들고 있으면 주위의 시선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책을 보려면 실내 조명이 너무 어두운 식당은 피한다.

◇ 혼자 가도 낯설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는 단골 식당을 몇군데 정해 놓는다.

◇ 점심을 든든히 먹고 저녁 때는 영화나 공연 관람을 하기 직전에 가벼운 스낵으로 저녁을 때운다.

◇ 혼자 밥 먹는 것이 외롭다고, 그 외로움을 이기려고 식사 도중 내내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화하는 것은 ‘나홀로 식사족’의 매너가 아니다.

◇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면 식당에 그냥 들이닥치지 말고 전화를 걸어 ‘1인용 테이블’을 예약한다. 처음부터 혼자 가겠다고 예약한 손님에게는 ‘눈치’를 주지는 않는다.

◇ 손님이 붐비는 ‘피크 타임‘은 피한다. 좀 빨리 가든지 아예 늦게 가든지 하라. 저녁 식사 같으면 오후 6시 이전에 가거나 오후 8시 이후에 간다.

◇ 손님이 붐비지 않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기피하는 구석 자리를 배정받았을 때는 당당히 더 좋은 자리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 음식을 너무 빨리 먹지 않는다. 주문한 음식을 천천히 갖다 달라고 미리 얘기 해둔다.

◇ 식당에 들어설 때 자신감에 넘치게 행동하라.

◇ 웨이터의 이름을 알아둔 다음 식당의 역사나 메뉴 등 이것 저것 질문을 하라. 그러면 외톨이가 된 느낌이 덜하다.

◇ 카운터에 혼자 밥 먹는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따뜻하게 대해주라. 다른 손님들이 보면 2명이 함께 와서 밥 먹는 것으로 볼 테니 훨씬 낫다.

◇ 주위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혼자 있는 여유와 한가로움을 십분 즐겨라. 사실 당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 같이 온 동료나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고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 와인이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글래스 와인’ 또는 ‘하우스 와인’의 선택 폭이 넓은 곳이 좋다. 4명이서 와인 4병을 마실 수는 있어도 혼자서 와인 1병 마시긴 어렵다.

◇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에 간단한 음료를 시켜서 마신다. 콜라 나 와인 한 잔도 좋다.

◇ 외국 여행할 때는 호텔 안내원에게 근처에 혼자 밥 먹기 좋은 레스토랑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

◇ 주방 앞에 딸린 카운터에서 식사를 한다면 조리 과정을 지켜 보면서 주방장과 대화를 나눈다.

◇ 스페인 여행 중이라면 고급 레스토랑보다는 타파스 바(tapas bar)를 이용하라. 적은 양의 음식을 골고루 맛볼 수 있고 음식 값도 저렴하다.

◇ 너무 로맨틱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은 피한다. 토요일 저녁이나 발렌타인데이, 크리스마스 이브도 마찬가지다. 주로 연인이나 커플들이 즐겨 찾기 때문이다.

◇ 혼자 밥 먹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생각하지 말고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여겨라



이장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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