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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꾸러미/다양한 이야기

위키피디아, 독립성·중립성 고집. 신뢰성엔 위기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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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의 실험과 한계

위키피디아의 철학적 기반은 '자유 소프트웨어' 또는 '오픈 소스 운동'에서부터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공짜'가 아니라 '공유(共有)'에 가깝다.

MS 윈도에 대항하는 컴퓨터 오퍼레이팅 시스템(OS) 리눅스는 오픈 소스 운동의 대표 주자이다. 1991년 리눅스 소스 코드를 무료로 공개한 이래 전 세계에 500만 명이 넘는, 자발적인 프로그램 개발자 그룹을 확보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역시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이 글을 올리고, 편집하며, 감시하기 때문에 '오픈 소스' 프로젝트라고 불린다. 위키피디아는 리눅스의 백과사전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위키피디아는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정보와 그것을 수정할 수 있는 권리를 공유한다는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른바 '일반 공중 라이선스(GPL·General Public License)' 개념이다.

위키피디아가 최근에 야심 차게 발표한 '오픈 교육운동'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이 운동은 교육 교재의 위키피디아 판이다. 공적 자금으로 개발한 교재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인터넷으로 유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지적 재산권 개념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거래하는 비용을 절감시키고, 콘텐츠의 확산을 돕는다. 위키피디아는 자발적이고 비영리적인 방식으로 운영되지만, 배타적으로 지식을 축적하는 방식보다 더 빠르고 폭 넓게 지식을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참여자들은 지식 기부를 통해 높은 만족감을 얻는다.

위키피디아는 제임스 슈로위키(Surowiecki)가 말한 '평범한 대중이 뛰어난 천재들보다 뛰어나기 위한 조건'을 고루 충족한다. 즉 다양한 구성원의 참여, 분산되고 개방적인 의사 결정 구조, 구성원의 의견을 정리하고 모으는 방법론, 그리고 다른 구성원의 의견에 영향 받지 않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독립성 등이 그것이다.

■지식도 협업… 네이버의 '지식인'과 다르다

위키피디아의 협업 생산 방식은 단순히 '즉문즉답'하는 네이버의 '지식인(지식iN)' 서비스와는 다르다. 위키피디아는 정보를 하나의 완성된 편집본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주요 정보에 대해서는 참여자들이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상호 합의를 도모한다.

위키피디아는 협업에 대해 엄격한 원칙과 의사결정 모델을 만들었다. 위키피디아의 핵심 편집 원칙은 3가지이다.

편견을 배제해야 한다는 '중립적 시각(the neutral point of view)'의 원칙, 신뢰할만한 소스를 제공해 내용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검증 가능성(verifiability)'의 원칙, 그리고 공표되지 않은 사실이나 주장을 배제한다는 '자체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 원칙(no original research)'이 그것이다.

위키피디아의 정확성을 높이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핵심 편집자들이다. 전세계에 약 1500명 정도인데, 거의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다.

편집자들 간에 해결되지 않는 논쟁은 '토론방'에 고지되어 이용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중재위원회(arbit ration committee)에 회부된다. 이 위원회는 모든 편집 활동의 최상위에 있으며, 위원은 편집자들 가운데 선출된다.

위키피디아는 중요한 의사 결정에 대해 다양한 피드백 장치와 참여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대의제 투표모델의 근간인 보통선거와 평등선거의 원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기여도에 따라 참여자에 가중치를 둔다. 가입한 지 얼마 안 되거나 기여도가 낮은 사람에게는 투표 횟수가 제한된다. 편집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 편집 매뉴얼을 갖추고 있고, 개인의 이력과 같이 전문적 영역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신뢰의 위기 징후와 위키피디아에 대한 도전

위키피디아의 개방적 시스템은 성공의 열쇠이기도 했지만, 신뢰를 위협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2007년 에스제이(Essjay) 사건이 대표적이다. 에스제이는 위키피디아에 2만 건이나 되는 정보를 올리고,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관리자로 격상되어 중재위원회 위원까지 맡았다. 그는 자신을 교회법을 전공한, 사립대학 종교학과 종신교수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24세의 무직자로 드러났다.

위키피디아의 신뢰 문제가 제기되면서, 대안 사이트들이 등장하고 있다. 시티젠디엄(www.citizendium.com)도 그 중 하나다. 위키피디아의 창립 멤버였다가 위키피디아를 떠난 철학박사 래리 생어(Sanger)가 만든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는 모든 사용자가 실명을 써야 하며, 참여자가 올린 모든 정보는 일일이 전문가들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위키피디아의 중립성을 부정하고 이념적 대안을 찾는 모델도 있다. 예컨대 컨서버피디아(www.conservapedia.com)는 위키피디아의 편집 방향을 진보적이라고 비판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사이트이다.

스콜라피디아(www.scholarpedia.com)는 검증된 전문가에게만 정보 입력 권한을 부여하는데,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유진 이즈히케비치(Izhikevich)가 만들었다.

■위키피디아는 미래 미디어의 시험대

초창기에는 위키피디아에 글을 쓰거나 수정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2005년 12월부터 위키피디아는 기사 작성자가 등록을 해야만 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물론 등록은 사용자 이름과 패스워드만 등록하면 되는 간단한 절차이며 몇 초면 끝난다.)

정치나 종교와 관련된 단어 설명은 편집 권한을 관리자급에게만 제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통제가 너무 강해질 경우 협업과 공유라는 위키피디아의 기본 정신이 위협받고 역동성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위키피디아의 딜레마인 셈이다. 위키피디아는 미래 미디어 시스템의 시험대이다. 위키피디아 실험의 향방은 미래 인터넷 사회의 지형을 예측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입력 : 2008.04.25 13:27 / 수정 : 2008.04.2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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