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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꾸러미/와인 이야기

[발칙한 와인] 1만원대‘괜찮은 와인’없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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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삼겹살 구워 한잔해야지.’

요즘 퇴근 후 아내와 와인을 즐기는 재미에 푹 빠진 김부장. 그날도 마트에 들러 진열대를 요리조리 훑어보고는 엉덩이가 넓고 어깨가 갸름한 ‘한 병’을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와 평소처럼 요란한 ‘오픈 행사’를 시작했다. 일단 스크류는 잘 들어갔다. 한데 아무리 당겨도 끄떡 않지 뭔가. 결국 아내가 유심히 보더니 하는 말. “활명수 캡이네.”

그럴 수도 있지. 거기까진 좋았다. 잔에 따르고 소믈리에 흉내를 내며 한 모금 마셨는데 아뿔싸, 달아서 두 모금은 못 마시겠다. 결국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러고는 ‘집에서 아내와 눈을 맞힐 수 있는 맛난 와인 좀 소개해줘 봐’ 외쳤는데….

하하, 김부장이 고른 것은 미국산 콩코드(Mogen David Concord, 8000원대)다. 물론 설탕과 소주를 넣은 한국식 ‘엄마표 포도주’를 떠올리며 단 레드와인을 찾는 사람에게 콩코드는 최고의 와인이다.

실제로 국내 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 중 하나다. 하지만 스위트 와인은 케이크나 초콜릿 같은 디저트와는 잘 어울리나 고기 등 메인 음식에는 타닌과 적당한 산도가 받쳐주는 드라이 와인이 적합하다. 그래서 식사 중에 함께하기는 무리다.

그럼 소위 ‘소주파’가 “괜찮은데” 할 만한 데일리 와인은 없을까. 나름대로 기준을 둬 봤다.

1만원대로 저렴하며, 마트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맛은 달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칠레, 호주 등 신세계 와인이 비교적 접근도가 높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1만원대 와인인 만큼 맛에 대해 큰 기대는 하지 말자. 다만 산지에서 수도 없이 들어오는 2~3달러짜리 와인 중 ‘그래도 낫더라’는 것.

이런 와인들은 힘이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쉽게 풀어지니 2004년 이후 것을 고르는 게 현명하다. ‘와인은 오래될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고급와인에서만 통용되는 말이다. 일단 와인을 알고자 하면 한 종류만 집중공략하기를 권한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품종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대략 감을 잡고 오랫동안 마시다 보면 그 와인에 대한 ‘맛 지도’가 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트의 1만원대 와인’ 여섯 가지를 골라 봤다.

첫째, 프랑스 보르도 ‘카스텔’(Castel, Cabernet Sauvignon, 2005, 1만원). ‘혈통 증명서’인 AOC급도 아니고 그 아래 뱅드페다. 신세계처럼 맛이 강렬하지 않다. 피니시도 짧고 여리나 섬세하게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 보르도의 기본기가 느껴지는 와인.

둘째, 와인동호회에서 먼저 떠 ‘TDS’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끈 스페인 ‘티에라 델 솔’(Tierra del Sol, Tempranillo, 8000원대·사진). 스페인 토종품종인 템프라니뇨로 만들었으며 딸기잼 등 과일 향이 달콤하게 피어오른다. 애호가들도 ‘박스 신공’을 벌일 만큼 가격대비 맛의 성숙도가 높다.

셋째, 미국 ‘콜롬비아 크레스트 투바인’(Columbia Crest Two vines, Merlot, 1만7000원대). ‘저가 와인은 첫 향과 첫 한 모금만 책임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러나 이 와인은 적당히 피니시가 있으면서 음식맛까지 즐겁게 하는 워싱턴주 개구쟁이다. 소시지나 피자도 잘 어울린다.

넷째, 호주 ‘제이콥스 크릭’(Jacob’s Creek, Grenache Shiraz, 2004, 1만4000원대). 달콤한 과일 향을 시작으로 담배나 후추 향도 살짝 머금은 발랄한 아가씨. 병 모양도 갸름한 부르고뉴 스타일. 30여분 버텨줄 줄도 알며 시라즈 품종 특유의 복합적인 향미도 지녔다.

다섯째, 칠레 ‘빌라 몬테스’(Villa Montes, Cabernet Sauvignon, 1만5000원). 오픈 후 하루 이상 보관했다 마시면 주저앉는 게 흠. 그래도 막 땄을 때 검은 체리향이 풍성하게 올라오는 칠레 와인 전형이다. 가격이나 맛에서 첫 와인으로 접하기 좋다.

여섯째,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클라시코 캄포그란데’(Orvieto Classico Campogrande, 1만3000원대). 상큼하게 화이트 한잔하고 싶을 때 이만한 것도 드물다. 안티노리사의 움브리아지역 DOC급. 가벼운 전채요리와 잘 맞고 입안 가득 과일 향이 음식의 맛을 돋워준다.

〈손현주 블로그 (http://blog.naver.com/marr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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