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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뜨거운 감자-일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은 재벌에 은행을 갖다 바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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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참여연대

이명박 당선자의 금융분야 공약은 크게 금산분리 완화로 요약된다. 벌써 당선자 진영에서는 금산분리 완화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구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과연 금산분리 주장의 논거가 타당한지, 또 현재의 구상에는 큰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는 새로운 정치권력의 등장이라는 현실적 흐름에 묻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는 타당한가. 결론부터 말하면 타당하지 않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은행을 재벌에 갖다 바치자는 말이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둘러 대지만 그 이유들은 서로 논리적으로 모순되거나 팩트를 왜곡하거나 금산분리 완화의 논리적 근거가 되기 않기 십상이다. 금산분리 완화 주장이나 이제까지 제시된 은행 소유규제 개편안의 문제점을 하나 하나 살펴 보기로 하자.

금산분리정책 때문에 외국자본이 은행 독식한다?

첫째 주장은 외국자본 대 토종자본의 문제로 포장하여 국민의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혹자는 “역차별”을 주장한다. 외국자본은 아무런 규제없이 활개 치는데 토종자본만 억울하게 발목이 잡혀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 은행법은 내ㆍ외국인을 차별하지 않고 하위규정으로 내려가면 은행인수와 관련하여 오히려 외국자본이 더 제약을 받고 있다.(외국인은 은행, 증권, 보험 및 그 지주회사만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으나 내국인에게는 그런 제약이 없다.)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은 산업자본이지 토종자본이 아니다. 산업자본은 내ㆍ외국인 할 것 없이 은행을 소유할 수 없고 금융자본은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적격성만 갖추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다.

외국자본 대 토종자본의 허구성은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다. 국민은행은 토종자본 은행인가 외국자본 은행인가?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DBS가 사면 안되고, 국민은행이 사면 괜찮은가? 만일 SC 제일은행이 사면 안되는가? 국민은행이 신용카드 사태에 돈을 넣지 않을 때에는 외국은행이라고 비난하고 외환은행을 살 때는 토종은행으로 간주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태도이다.

정책당국자의 태도도 믿을 만한 것이 없다.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을 보자. 외환은행을 론스타에게 매각한 사실상의 장본인이 변 국장이다. 그리고는 재경부를 나와서 토종자본을 육성한다고 보고 펀드를 꾸렸다. 외환은행을 외국자본인 론스타에게 팔 때는 언제고, 나중에는 외국자본을 막기 위해 토종자본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금산분리 유지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사건이다. 이 거래의 불법성은 표면적으로는 BIS 자기자본 비율의 축소조작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거래의 진정한 불법성은 금융감독당국이 은행법 제16조의2를 무시하고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인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넘긴 데 있다. 즉 금산분리 원칙만 철저하게 준수했다면 외환은행은 절대로 론스타에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런 사태를 막겠다고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자는 것은 논리적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으로 외국의 산업자본이 우리나라 은행을 사겠다고 나오면 어찌할 것인가?

국내금융산업 발전 위해 금산분리 완화 필요하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는 은행의 발전이다. 국내 금융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돈을 가진 곳은 재벌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재벌 돈을 넣고 자본금 확충해서 은행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이것이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인가. 시장경제에서 기업이 돈이 없다면 주식 또는 채권을 발행해서 자기자본 또는 타인자본을 확충하면 된다. 은행의 경우 BIS 자기자본 비율 규제가 있기 때문에 주식을 발행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은행 주식을 발행하지 말라고 누가 규제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국내 은행 자기자본 비율이 10%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뚱딴지 같은 자본금 부족인가?

은행에 주인이 있어야 한다?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는 은행에 주인을 찾아 주자는 것이다. 팩트를 모르는 소리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세계 100대 은행중 은행주식을 50% 이상 소유한 지배주주를 가진 은행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예외에 속한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유명 거대 은행들은 절대적인 과점주주가 없다. 그래도 이 은행들은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닌다.

은행에 주인을 찾아 주자는 주장의 허구성은 이 당선자 진영에서 흘러나오는 은행 소유규제 개편방안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 당선자측은 재벌의 소유한도를 현행 4%에서 15% 정도로 상향하여 7개 내외의 재벌이 은행을 균점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듯하다. 7명의 사공이 있는 은행이 과연 주인있는 은행인지 아닌지는 상식에 속한다.

금융시장 투명해졌으니 재벌의 사금고화 걱정 안해도 된다고?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무모한 논리로는 “이제 우리 금융시장도 많이 투명해졌으니 재벌의 사금고화를 걱정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주장이다. 금융시장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아니 애써 눈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멀리 거슬러 갈 것도 없다. 지난 10월 29일 이후 거의 일주일이 멀다 하고 터져 나왔던 삼성그룹의 불법 비자금 사건을 보자. 삼성증권과 우리은행 등에 수백, 어쩌면 수천 개의 불법 비자금 계좌가 유지되고 있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벌써 잊었는가. 이 비자금 계좌가 개설, 유지된 것이 아득한 태초의 일이란 말인가. 아니다. 5년도 안된 최근의 일이다. 그럼 감시수단이 부족했단 말인가. 아니다. 감시수단은 더 이상 추가할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은행을 보자. 우리은행은 금감위와 금감원의 감독을 받고,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이므로 예보의 감시도 받고, 감사원의 감사도 받는다. 거액 현금거래와 관련해서는 재경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의 감독도 받는다. 사실상 국회의 국감도 받는다. 불법 계좌조회와 관련해서는 경찰의 수사도 받았다. 더 이상 무슨 감시수단을 추가한단 말인가. 삼성 비자금 사건의 교훈은 재벌이 마음만 먹으면 금감위, 금감원, 예보, 감사원, 경찰, 검찰 등 거의 모든 국가적 통제수단의 적용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시장이 이미 투명해졌으니까” 또는 “자산운용과 관련된 규제를 적당히 강화한다면” 또는 “금융감독을 철저히 하기만 하면” 재벌에게 은행을 주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양심을 가리지 않고서는 제기할 수 없다.

금융은 실용이 아니라 원칙이다. 금융행위는 거래비용이 높은 곳에서는 절대로 번성할 수 없다. 그리고 거래비용을 낮추는 방법으로 인류가 이제까지 고생고생해서 얻은 교훈이 원칙의 준수, 투명성, 예측가능성 등이다. 당장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그 때 그 때 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금융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뒷걸음칠 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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