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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동사니 꾸러미/와인 이야기

8000원대도 즐기기에 무리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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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대도 즐기기에 무리 없었네

2007년 12월 27일(목) 오후 3:52 [한겨레신문]



[한겨레] 와인은 서양에서 술이 아닌 ‘음식’으로 대접받는다. 프랑스에서 와인에 주세를 매기지 않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도 와인이 갈수록 대중화하고 있다. 마트와 편의점의 와인 매출이 급성장하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마트의 경우 올해 와인 매출이 지난해보다 38% 증가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어떤 가격의 와인을 어떤 기준으로 사야 하는지 여전히 헷갈린다. W서울워커힐호텔의 소믈리에 윤달선(32)씨가 마트·편의점 와인들을 ‘블라인드 테이스팅’(라벨을 가린 상태에서 와인을 시음하는 것)했다. 홈플러스 동대문점, 이마트 천호점, 지에스25시 공덕대우점에서 2만원 밑의 레드와인 8병을 샀다. 테이스팅은 12월17일 저녁 한겨레 사옥에서 진행했다. 이마트와 홈플러스는 매출규모 1, 2위이며 지에스25시는 편의점 가운데 와인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와인 보관 상태와 직원들의 와인 지식도 따져봤다.


30분쯤 지나자 향이 오른 것들도


고나무 기자(이하 고) 와인 8병을 와인잔 8개에 따른 뒤 순서를 바꿔 놓겠습니다. 1번부터 8번까지 차례대로 테이스팅해 주시죠.

윤달선 소믈리에(이하 윤) 1번은 시라즈(거친 맛과 강한 향이 특징) 품종 같습니다. 약간 단맛도 섞여 있고, 과실 향도 납니다. 세련된 맛입니다. 2번은 카베르네 소비뇽(레드와인 대표 품종으로 후추 같은 짙은 향이 난다) 품종 같은데 프랑스 와인은 아닌 듯합니다. 3번은 향이 좋습니다. 약간 매콤하군요. 동시에 설익은 과실 향도 납니다. 신선합니다. 4번은 맛과 향이 별로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5번은 옥수수빵을 굽는 듯한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흙내음같이 구수합니다. 맛은 좀 가볍고 드라이하고요. 뒷맛에 과실 향 여운이 있습니다. 토마토소스 파스타나 해산물 파스타와 잘 어울릴 듯합니다. 6번도 별 인상이 없습니다. 7번은 뒷맛에 과실 향이 살짝 배어 있습니다. 8번의 맛은 미디엄 바디(‘바디’란 맛의 진한 정도를 표현하는 말. 풀 바디, 미디엄 바디, 라이트 바디로 구분한다)입니다. 대부분의 와인들이 가벼운데 8번만 묵직하군요. 이제 라벨을 확인해 볼까요?


1번은 스페인산 티에라 델 솔 템프라니요(Tierra del sol tempranillo) 2006(8600원), 2번 오스트레일리아산 노블 밸리 시라즈(Noble valley shiraz) 2005(1만3000원), 3번 칠레산 카르멘 메를로(Carmen merlot) 2006(1만3500원), 4번 프랑스산 그랑 테아트르 보르도(Grand theatre bordeaux) 2005(1만500원), 5번 프랑스산 샤토 기봉 보르도(Chateau Guibon bordeaux)(1만9900원), 6번 이탈리아산 시트라 몬테풀치아노 다브루조(Citra montepulciano d’abruzzo) 2006(7900원), 7번 프랑스산 캄브라스(Cambras)(지에스25시에서 노블 밸리를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받음), 8번 칠레산 산타 리타 120 메를로(Santa Rita 120 merlot) 2005(1만3900원)입니다. 가격 대비 품질로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요?

숫자로 순위를 매기는 건 건방질 것 같습니다. 와인 맛은 주관적이어서 사람마다 다르고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는 와인의 잠재력을 알 수 있을 뿐 진면목을 알기 어려우니까요. 다만 특성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1번 티에라 델 솔은 가격이 1만원 밑입니다. 그러나 맛과 향이 세련되고 좋습니다. 가격 대비 품질이 훌륭합니다. 샤토 기봉도 가격 대비 맛과 향이 좋습니다. 반면 시트라는 블라인드 테이스팅 뒤 두 차례 더 테이스팅을 했지만 별 매력이 없네요. 개봉 뒤 하루쯤 뒀다 마시면 괜찮을 수 있습니다. 4번이 그렇습니다. 처음 테이스팅을 할 땐 향이 피어오르지 않았는데 30분쯤 지나 테이스팅 막바지에 향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와인도 그날그날 ‘컨디션’이 다릅니다. 개봉하고 나서 시간이 지나야 더 좋은 맛이 날 수 있습니다.



와인 보관 상태와 직원들의 지식 수준


와인 보관 상태나 직원들의 와인 지식 수준은 어땠나요?

먼저 들렀던 이마트 천호점부터 말해 보죠. 일단 와인 매장이 너무 건조했습니다. 매장 조명도 너무 밝습니다. 와인셀러를 보면 유리에 색깔이 들어가 있고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죠? 그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셀러도 없었습니다. 아까 이마트 와인 매장 구석에 있는 한 병을 집어든 것 기억나시죠? 그 와인은 코르크가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아마 수송 도중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내부가 끓어올라 코르크가 부푼 거죠. 이런 건 사면 안 됩니다.

17일 오후 5시께 매장에 갔는데 와인 담당 직원이 없어서 직원을 찾아달라고 한 뒤 20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예. 고 기자가 젊은 직원에게 “와인 초보자이며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와인을 곁들이고자 한다”며 추천을 부탁했죠. 그러자 그 직원이 “처음 마실 땐 단맛이 좋다”며 품종이나 각 지역 와인 특성에 대한 설명 없이 요즘 많이 팔리는 와인을 추천했습니다. 좀더 자세하게 추천해 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대신 답변했습니다. 그 직원은 나이 어린 직원보다는 좀더 지식이 많았지만 그 역시 단맛 와인 중심으로 추천하는 데 그쳤죠. 스스로 와인담당 직원이라고 소개했지만 그냥 ‘와인 책을 한두 권 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인을 음식보다 그저 상품으로 대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홈플러스 와인 매장은 조명이 다르더군요.

조명이 매장 홀과 달리 은은한 노란색 조명이었습니다. 조도가 훨씬 낮아 보였습니다. 고가 와인들은 따로 셀러에 눕혀서 정리해 놨더군요. 중저가 와인들은 세워 놨지만 나라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놨습니다. 천호나 동대문은 두 지역 다 소비자 생활수준에 큰 차이가 없을 텐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궁금하네요.

홈플러스에서도 직원에게 “와인 초보자인데 친구들과 식사하면서 와인을 곁들이고자 한다”며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예. 나이 어린 직원이었는데 와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맛 와인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단맛이 없으면서도 초보자가 즐길 만한 타닌(떫은 맛을 느끼게 하는 성분)이 많지 않고 가벼운 와인을 추천했습니다. 품종별 특징,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지도 친절하게 설명했습니다.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편의점은 와인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눕혀서 보관해야 하는 것인가


세 곳 모두 와인을 세워 뒀습니다. 와인은 원래 눕혀서 보관하는 것 아닙니까? 와인을 세워서 보관하면 코르크가 건조해져서 수축하므로 그 틈으로 공기가 들어가서 와인이 산화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홈플러스와 지에스25시 직원들에게 그걸 지적하자 “회전율이 빨라서 문제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 역시 4∼5개월 정도는 세워서 보관해도 무리 없다고 봅니다. 다만 이건 회전율이 빠른 제품에 해당합니다. 아까 이마트에서 본 것처럼 세워 놓은 와인 가운데 회전율이 낮은, 즉 많이 팔리지 않는 제품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테이스팅한 와인은 홈플러스에서는 직원에게 추천받았고 나머지 두 곳에서는 저희가 직접 골랐습니다. 전반적으로 1만∼2만원대 와인들 모두 가볍게 즐기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초보자가 마트 와인 고를 때…


포일을 돌려보고, 코르크 살펴보고


초보자가 마트 와인 고를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 세 가지를 소믈리에 윤달선씨한테 들었다.

⊙ 병목의 포일이 잘 돌아가는지 본다 : 코르크가 건조해져서 수축하면 병목과 코르크 사이에 틈이 생긴다. 와인이 이 틈으로 새어나와 굳어서 포일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포일이 돌아가지 않는 와인은 공기와 닿아 산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코르크가 축축해서 밀봉된 와인의 포일은 잘 돌아간다. 지나치게 오래 세워 둔 와인은 코르크가 건조해질 수 있으니 마트에서 와인을 세워 놨을 경우 반드시 포일을 돌려 본다.

⊙ 코르크가 솟아오른 와인은 피하라 : 병 내부의 온도가 올라가 공기가 팽창하면 코르크가 튀어나온다. 수송 과정에서 온도 조절에 실패해서 내부가 끓어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유든 코르크가 솟아오른 와인은 고르지 않는 것이 좋다.

⊙ 낮은 가격대 와인부터 도전하라 : 윤달선씨는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은 와인 맛의 30%도 채 맛보지 못한다. 와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자주 접할수록 숨겨진 와인의 맛을 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와인 초보자가 덮어놓고 비싼 와인을 마시는 것은 낭비다. 1만∼2만원대 와인부터 즐겨라.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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